발길을 멈추고

새한서점 찾아가기

치악동인 2011. 5. 7. 13:01

소백산 시멘트 포장길을 하루종일 툴툴거리고 걸었더니

더 이상 걷기가 지루하고 싫다.

어린이날 해는 아직도 많이 남아 햇볕 짱짱하니 집으로 돌아가길 조금 이르고.

어차피 집에 가는 방향이고 예전에 금수산 왔을때 지나쳤음직한 위치겠거니 싶어

찾아가는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듯 했다.

그래도 일단 네비찍었다. 나온다.그럼 찾아가는건 아주 쉽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착한곳이 단양 적성우체국 앞. 

 어라?

여가 어디여?

뭐 인터넷에서 보기에도 오지중의 오지라 했으니 대충 여기까지 차가 올수 있는곳인가 보다 했지만

이곳이 오지라고 보기엔 글쎄,,,

단양 적성면이면 아주 익숙한 지명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노후를 보내신곳이고

울 아버지가 집안의 땅이란 땅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팔아드신 선산이 있는 파랑리도 적성면 소재다.

아!

돌아가신 울 아버지가 억울해하실만한 대목이니 울아버지가 땅 다 팔아먹었다는건 취소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선산을 팔아버린건 울아버지 맞다.

원래 사람은 처음과 끝이 중요한거다.

사실은 큰댁으로 양자가신 큰아버지가 알짜는 죄다 팔아드시고 울 아버진 땅금도 안 쳐주는 시골의 산 하나

팔아드셨을뿐이지만 몽땅 덮어쓰는거다.

 

그런데 시골동네 한바퀴를 다 돌았는데 서점이 없다.

우체국옆 골목길로 걸어들어가니 폐교인듯한곳이 있긴했는데 "단양한옥학교" 라는 간판이 걸렸다.

파출소도 있고 주민센타도 있는데 서점은 없다.

네비년한테 또 속았다.

파출소가서 물어볼까 싶었는데 죄 지은적도 없는 난 공권력이 웬지 싫다.

특히 이 정부 들어선 더 싫다.

차라리 동네 구멍가게 가서 낮잠 주무시는 아주머니한테 묻는게 나을것 같았다.

일단 시원한 캔 음료하나를 사서 계산하며 물어야 아주머니가 정겹게 가르쳐 주실게다.

 가게 아주머니는 정말 정겹고 친절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딱 1Km만" 온길을 되돌아 가라 했다.

놀랍게도 그 아주머니의 거리감각은 정확해서 차량의 계기판으로 딱 1Km지점에서 새한서점 안내판을 발견했다.

색바랜 안내판은 분명 아까 내가 지나친곳에 있었건만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쩜 서점 주인은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게 번거롭고 귀찮았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큰 성황나무가 있었고 그 옆으로 정자가 하나 있다.

물 오른 느티나무 새순은 봄날의 오후 햇볕에 노랗게 빛나고 정자의 기둥마저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눈으로 보기엔 느티나무의 새순 색에 정자가 동화된듯 보였다.

사진으론 색이 분명 차이나 보이지만 역광으로 볼땐 정말 느티나무 색이나 정자기둥의 색이 똑 같아 보일정도였다.

누가 일부러 봄의 느티나무 색과 정자기둥의 색을 맞추려한걸까?

오호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잠시 망설였다.

여기다 차를 두고 걸어갈까?

가게 아주머니 말로는 동네 뒷편에 있다던데 한참 농사일에 바쁜 시골마을 좁은길을

승용차로 씽~허니 지나가는게 염치 없는짓은 아닐까.

대도시에서 서점을 하던 주인이 이것저것 다 팽겨치고 찾아든 그 조용한 골짜기를 너무 편안하게 차로 방문한다는게

조금 미안하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난 하루종일 그 지겨운 산길을 걸었다.

염치불구하고 동네를 가로질러 나갔다.

오십여호쯤 될까한 동네 한가운데 "현곡문화생활관"이란 건물앞을 지나 갈림길이 나온다.

마늘이 제법 많이 자라서 이젠 캘 때가 된듯하다.

작은 안내판하나가 마늘밭 오른쪽을 가리킨다.

좁은 농로한편에 밭일하느라 세워둔 차 옆으로 살금살금 지나쳐 작은 둔덕하나를 넘었다.

다시 나타난 새한서점 안내판은 비포장길을 가르킨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이젠 차에서 내려야할 시간이다.

성지순례를 가는 이들은 삼보일배를 해가며 찾아가기도 한다는데 어찌 몇걸음을 아낄까.

하물며 심산에 은거한 이를 찾아가는데 어찌 코 앞까지 차를 가져간단말인가.

백미터쯤만 걸으면 된다.

졸졸 흐르는 시내 옆으로 하얀 능금꽃이 피었다.

사장님은 열심히 공사중이다.서가를 더 늘리려는 공사일테지.

초라한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훅 끼쳐오는 묵은 책 냄새가 좋다.

도시의 서점에서 느껴지는 휘발성 인쇄잉크의 냄새가 아니다.

 

서가의 외벽은 어디 폐교의 교실문짝을 떼어다 만들었나보다.

창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책장을 세워서 자연채광을 했다.

흐린날을 대비해서 천막 천장엔 전구가 주렁주렁 달렸다.

책 구경하며 구석으로 들어가는데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살그머니 문을 당겨보니 바깥은 능금나무 옆을 흘러내리던 시냇물이다.

담양의 소쇄원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이라는 곳.

인위적으로 조경을 한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에 맞는 건축을 했다는.

가을풍경이 정말 아름다운곳이라 두고 두고 생각나는곳이다.

이곳 쥔장의 머릿속에 그런 풍광을 계획하고 있었을까?

시냇물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

아주 좋은 생각이지만 앉아서 책까지 펼쳐들면 오늘중엔 집에 못 간다.

 

내가 찾는 책은 "콜레라시대의 사랑"이다.

종류별로 정리를 해 놓아서 책을 찾기가 어렵진 않겠지만 불행히도 내가 찾는 책은 없다.

도움도 받을겸 말도 걸어 볼겸 직원분한테 물었다.

둘이 한참을 더 찾았지만 결국 없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간다는건 텍도 없는 소리지.

사실 내가 좋아하는책은 의학추리나 법정추리소설같은 추리소설이다. 

동화도 좋아한다.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동화책도 많으니까.

너무 어려운 책보다는 쉽고 재밌는 책이 느낌이 더 많이 온다.

그래서 세권 골랐다.단돈 칠천원에. 

어쩜 이 책들은 내가 오래전에 읽은 책인지도 모르겠다.

로빈쿡 의학소설은 거의 다 읽었지만 몇 장 넘겨보니 안 읽은듯도 해서 들고왔다.

책을 산다는건 이곳에 다녀간다는 기념찰영같은거다.

 

그런데 왜 이곳에 찾아올까?

주인이야 산이 좋아 이곳으로 왔고 인터넷 판매도 가능한 시절을 만났으니 그런다지만

난 왜 이 골짜기의 책방으로 찾아왔을까?

또 다른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아왔다.

무언가가 있을까봐 왔다.

왔으니 무언가를 들고가긴 해야겠는데 그 무언가가 뭔가를 몰라 책이라도 들고간다.

 

나오는길에 언덕에서 차를 만났다.

내가 후진해서 차를 비켜세웠더니 지나치는 차의 창문이 열린다.

"뒤에 한대 더 있어요"

차 두대가 서점으로 내려간다.

아쉽다.

넓은곳에 세워두고 걸어내려가면 좋을텐데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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