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행적

치악동인 2011. 4. 30. 12:13

큰처남의 둘째 아들이 설악산에 콘도를 예약했단다.

아내는 쉬는 일요일이 아니었음에도 직원들에게 가게 맡기고

다녀오기로 했다.

가게 비우고 놀러간다는거,

처음있는 일이다.

딸아이 졸업했고 돈 들어갈일 많지 않으니 여유가 생긴것일수도 있고

다시금 화해무드를 탄 가족관계를 위한 희생일수도 있다.

토요일까지 가게를 비울수없으니 저녁에 조금 일찍 문 닫는걸로 해도 출발시간이 저녁 여덟시.

중간에 술 안주거리로 회 한접시는 준비해서 가야하니 도착시간은 늦은 열한시다.

아침먹을것도 다 준비를 하란다.

소고기 국밥 포장판매하는 집에서  포장판매하는걸로 8인분을 준비하고 햇반도 준비했다.

이해가 잘 안가는 대목이다.

놀러가겠다고 여행 계획을 잡았다면 그정도는 출발할때 이미 준비하는것 아닌가?

또 밤늦게 도착하는 우리가 횟감을 준비해야한다면 더 늦어지는건 뻔한 이치 아닌가?

나 같으면 기다리는 시간에 횟감준비해놓고 늦게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겠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합리적인 행동들이 통하지 않는다.

무조건 우리가 다 준비해야한다는 식이다.

늦은 시간 술판이 벌어졌다.

새벽 세시.

술을 마시던중 딸아이와 함께 논쟁이 시작됐다.

별것도 아닌일이었지만 난 딸아이와 취중논쟁을 즐긴다.

피 터지게. 

주제는 부모의 부양에 관한 남녀간의 견해차이다.

외동딸인 딸 아이는 부모 봉양에 관한 강박증이 있나보다.

그 조건이 맞는 상대와 결혼을 하겠단다.

그런 말도 안되는,,,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날은 밝았는데 그리 쾌청하진 않다.

오늘 뭐 할까 계획을 내게 묻는다.

조카의 딸아이를 위해 온천을 선택할건지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른건지를 되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뒤죽박죽 횡설수설이다.

분명 온천에 갈수없는 사정이 있는 마누라가 온천엘 들어갈수 있다고 우긴다.

티켓팅하러 가면 틀림없이 그 앞에서 "나 못들어가는데,,,"할거 뻔한 사람이.

결국 권금성으로 케이블카나 타러가기로 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봉화대가 나온다.

깍아지른 절벽과 잔설이 절경이다.

하지만 그 몇걸음도 젊은 조카부부와 딸아이만 따른다.

바위산을 기어올라갔다.

사실은 지난밤 음주의 영향으로 뱃속에서 가스가 차 오르고 있었다.

부글부글.

봉화대인근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야외라고 함부러 가스를 방출했다간 개 망신으로 직결될수도 있었다.

봉화대 꼭대기에 올라가면 남들 방해받지않고 가스를 배출할수 있으리란 생각에

자꾸 올라갔다.

하지만 내 뒤로 내 앞으로 사람들이 자꾸 따라 붙었다.

결국 봉화대 뾰족한 꼭대기에 올랐으나 소기의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설악산은 권금성 케이블카 왕복으로 끝났다.

허망하지만 별수 없다.

이건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니니까.

점심을 먹고 낙산사를 둘러봤다.

아직 헤어지기 아쉽다는 남매를 위해 낙산사 아랫쪽 방파제에 모여있는 횟집중 한군데를 들어갔다.

또 술판을 벌렸다.

날이 어둑해질 즈음 큰처남은 만취상태로 접어들었고 아내도 취해갔다.

 술이 얼큰한데 야경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해안선의 불빛과 작은 무인등대불빛이 만나는걸 찍어보고 싶었다.

바람이 무지 불었다.

술이 취해서 대충 찍었다.

불빛의 소통따윈 모르겠다.

있었는지 없었는지.

소통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인등대 불빛이 꺼진것도 아니고 해안선의 불들이 꺼진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모를뿐이다.

그들이 소통을  했는지  소곤거리고 있었는지.

처남내외와 조카내외가 자기들 타고 온차로 돌아갔다.

우린 우리차로 왔다.

근처 노래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각자의 차로 돌아간것인데 술 취한 아내가 뒷좌석에서

중얼거린다.

"오빠,,,우리 이대로 헤어지는거야,,,?"

신파다.

오륙십년대 연극에서나 등장할까 말까한 신파 대사가 아내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장모님 문제로 반목하던 형제가 겨우 화해를 했다.

아니다.

난 용서를 했을뿐이다.

'발길을 멈추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한서점 찾아가기  (0) 2011.05.07
소백산  (0) 2011.05.07
애처러운 것들  (0) 2011.04.29
4월8일의 행적  (0) 2011.04.28
조바심  (0) 2011.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