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의 혀
안도현
앵두를 먹었지
그러니까 작년 여름
툇마루 끝에 앉아 먹었지
한 알 한 알이 예뻐서
한 알 한 알을 낱낱이 들여다보며
거 왜 있잖아, 시기도 하고 달기도 한
연애 같은 앵두를
흰 쟁반 가득 따다가 놓고서는
손가락으로 한 알 한 알 골라 먹었지
앵두 즙이 잇몸 속까지 적셔서 처음에는 찔끔 진저리치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언제 이 앵두를 다 먹나 싶어서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듯이도 먹었지
아무리 입에 우겨 넣어도 볼이 불룩해지지 않는 것은
앵두 알을 씹는 사이, 그 어느 틈에
씨앗을 발라 뱉는 기막힌 혀가 있기 때문
거 왜 있잖아, 앵두의 입술에 내 입술이 닿을 때,
앵두 알을 깨물어 입안에서 환하게 토도독 터져서는 물기 번질 때,
하루 내내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때,
장차 내 인생이나 네 인생에 쉽사리 잘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때,
앵두를 먹을 때,
툇마루 끝에 앉아
앵두를 먹었지
앵두 씨를 툿,툿,툿, 뱉어가며 먹었지
그런데 있잖아, 앵두 씨에도 혀가 있다는 말 들어봤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혀끝으로 발라 우리가 마당에다 내뱉은 만큼
앵두 씨가 자기를 밀어 올리는 것 봤나?
지금 앵두의 혀가
날름날름 연초록 바람을 골라 먹고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