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땡땡이 세번째

치악동인 2012. 8. 23. 14:10

법성포 야경을  뒤로 하고 방향을 북쪽으로 잡았다.

하루는 온전히 땡땡이를 치자고 맘 먹었건만 일기예보에 비가 온단다.

참 되는일 없다.

날이 좋았으면 강천산을 올라볼 생각이었지만 비가 온다는데야,,,

일단은 집에 가까워지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가다가 하룻밤을 묵어야겠지.

정읍에 가까워지는 국도를 지날때 졸음이 밀려왔고 마침 국도변에 모텔을 발견했다.

주변에 민가조차 없이 모텔만 하나 덩그라니 있는.

술생각 난다고 뛰쳐나갈만한 조건이 아니니 포기하고 잠만 자려는 나름의 배수진이다.

열시 조금 넘어 잠깐 잠들었다 열두시 반에 깼다.

티비를 켜고 재방송 오락프로를 한참 보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뒤척대가 더워서 선풍기를 켰더니 이놈의 선풍기가 회전을 하다 가끔 덜거덕 거리는 소리를 낸다.

잠시 뒤 덜거덕 거리는 선풍기머리를 고정시키고 에어컨도 켰다.

그러다보니 날이 밝았다.

그리고 억수같은 장대비가 퍼 부었다.

다행히 전주어귀쯤에서 비가 수긋해졌다.

전주 한옥마을을 향해 고속도로를 빠져나갔다.

조금씩 내리는 비쯤이야 우산으로 충분할터이고 햇빛 강한날보다는 색감도 더 좋을터이고. 

 한옥마을은 이런 저런 찻집과 공방들로 채워졌나보다.

좁은 골목길은 우산을 쓰고 지나기 힘들만큼 좁았지만 그래서 더 졍겨웠다.

골목은 여러 의미로 다가 오지 않는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며 지나간것들에 대한 그리움 같은.

나팔꽃이 있는 골목 안쪽을 향해 셔터를 누를때 갑자기 그 길의 끝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물론 나의 그녀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그녀이긴 할게다.

가녀린 몸 하나에도  골목길이 가득 찬듯 느껴진다.

능소화 담장밖으로 늘어져있는 길.

빗길임에도 한옥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여자들이었지만 간혹 쌍쌍이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했다.

저사람들 우산을 따로 쓴거보니 대충 이십년이상은 함께 살았겠다.

그건 점쟁이 아니라도 턱 보면 안다.

버려진 집 잠긴 대문사이로 가시덩쿨이 고개를 내 민다.

바깥 세상이 궁금한 모양이다.

왜 안 그렇겠나.

자신을 버려두고 밤도망 기차를 탄 주인놈 소식 그리운 감나도 가지를 담장 밖으로 드리우는데.

하물며 골목길을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에 가시덤불인들 왜 궁금하지 않겠나.

 한옥마을을 보는 재미는 무엇보다 골목길인것 같다.

이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하는 기대감.

잊혀져가는 어릴적 기억을 거슬러가는 설레임도 있고.

 아무래도 렌즈에 빗물이 묻은 모양이다.

사진마다 중간에 뿌옇게 흐려지니.

대한 황실 승광재?

나라가 망해가는데 왕실이면 뭐하고 황실이면 뭐하나.

 

 

사람들은 오래된 골목길을 돌고돌아 다시 세상속으로 돌아간다.

나도 그렇다.

자주 울려대는 전화기를 버려둘수도 없고 마냥 땡땡이를 즐기고 있을만큼 속이 편하지도 않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

비오는 고속도로를 향해 골목길을 버리고 큰길로 큰길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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