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설악산 한계령길

치악동인 2012. 8. 3. 16:02

휴가시작이다.

며칠의 연휴를 쉬자고 죽자살자 달려온 두달여.

뜻하지 않은 장모님 병환으로 아내는 휴가 삼일동안 장모님 곁에서 수발을 들어드리고 싶단다.

그럼 난?

집에서 계시는것도 아니고 요양병원 집중치료실에 계신분을 간호할 일도 수발할 일도 없건만

아내는 그러고 싶다니 할일이 있건 없건 내 휴가도 장모님께 저당잡힐건 뻔하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난 모르겠소 했다가 무슨 낭패를 당하려고,,,

아주 예전에 누군가( 그 누군가는 얼마전 운명하셨다)는 내 사주팔자를 보더니 아주 기분나쁘게 정의했다.

"하긴 죽어라 열심히 하는데 나중에가선 좋은 소리 못 듣는 팔자!"

잘못하면 삼년간 장모님 모신 내 알량한 공로까지 이 참에 날아간다는 경고를 되새기며

혼자 쉬는 토요일 하루만이라도 내 시간으로 써야겠다 맘 먹었다.

그래서 설악산으로 갔다. 

 일찍 일어나 출발한다는게 깜빡 늦잠을 자던중에 딸아이 목소리에 놀라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국도가 길이 좋고 차가 없어 중간에 된장찌개가 무지 맛있다는 집에서 밥까지 한그릇 먹었는데도

한계령휴게소까지 두시간정도 밖엔 안 걸렸다.

휴게소에서 가급적 먼곳에 차를 주차시키고(장기주차하면 시간당 만원씩 주차요금 받겠다는 엄포때문은 아니다)휴게소옆쪽의 산길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계단길이 이어진다.산길이 늘 그렇듯.

그간 농사조금 짓는다고 아침,점심,저녁 쉴틈이 없기도 했었지만 그 핑계로 운동도 너무 쉬었다.

점심산책마저 거른지 한참 됐으니 계단길 십분만에 숨은 턱에 차오른다.

이게 무슨,,,

 재작년 백담사로 해서 봉정암에 오를땐 하루종일 비가 왔었지.

오늘은 맑은 날씨지만 산정엔 안개가 끼인다.

아무래도 맑고 쾌청한 설악의 풍광을 보기는 힘들겠구나 싶어서 괜히 걸치적거리는 카메라가 원망스럽다.

이래서 똑닥이나 들고다녀야하는건데,,,

괴산 어디 산은 바위위에 또 하나의 바위가 내려앉았다고 UFO바위라고 이름 붙였던데 여기도 UFO가 내려앉았다.

잘 찾아보면 있다.

뭐가 이래 오르락 내리락 한다냐,,,

한계령길은 후딱 능선으로 올라서서 장쾌한 설악의 암봉들을 발아래 두고 걷는줄 알았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한계렁삼거리까지는 상당한 깊이의 협곡을 통과해야만 하니까 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해야한다.

삼거리에서 왼쪽은 마등령으로 올라서서 장수대쪽으로 가는길이로 난 오른쪽 대청봉을 향해 걷는다.

우람한 주목나무 한그루가 이정표처럼 서 있다. 

 주목나무를 지나쳐 조금씩 고도를 높여나가다 보면 어느새 능선길에 발을 딛고 서 있게 된다.

왼쪽의 암봉들은 안개에 가려졌고 오른쪽 한계령 고갯길로 쏟아져 내려가는  물마른 깊은 계곡만 보인다.

어느해인가 이  계곡으로 폭우가 쏟아져 내려 저 아랫쪽은 길이 끊기고 집이 떠 내려갔었다.

오색약수마저 토사에 묻혀서 다시 복원해야했고 끊어진 도로를 다시 보수하는데 또 몇해나 걸렸다.

저 깊은 골에 또 다시 폭우가 쏟아진다면 그걸 또 무슨수로 막아내나,,,

안개는 산 아랫쪽에서 위로 밀려 올라왔다.

먼 산은 하나도 뵈지  않았으니  풍경이랄것도 없다.

젠장.설악산은 나랑 별로 안 친한가보다,,,

이름도 모르는 꽃만 몇장 담아가야하려나 보다.

"둥근 이질풀" 일듯해서 검색했더니 맞네.

나도 제법이군.ㅎㅎ

 

 

"동자꽃"

이꽃도 동자뭐시기라고 어디서 본듯해서 쉽게  찾았다.

 

 

 

꽃 모양이 초롱이라 혹 "금강초롱"인가 싶어 찾아봤더니 종 모양이 영 다르다.

"모시대"란다.

봄에 나물이 그렇게 맛있다는 그 모시대가 이 모시대인줄은 모르겠다.

 

"산꿩의 다리" 

꿩 다리가 저렇게 생겼던가?

 

 

 

"노루오줌" 

얘는 생긴 모양으로 이름을 만든건 아닌가 보다.

 

대청봉 오르는 길가에 흔하게 피어있던 "바람꽃"

종류가 워낙 많은 바람꽃인지라 상세한 종은 모르겠고 하여간 바람꽃.

지나고 나니 아쉬운건 끝청 가기전에 "큰앵초"가 많이 보였는데 그걸 안 담았다는거.

까막눈이 동자꽃과 앵초가 헛갈려서 그게 그건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아차 싶었다.

때는 늦은걸,,,

 

 

 

아마 여기가 ""끝청"쯤 되는 곳이었던가 보다.

설악산 봉우리중에 젤 높은곳이 대청이요 다음이 중청 그리고 소청이라는데 끝청은 또 뭔고?

안내판에 보니 귀때기청봉이라는곳도 표기되어 있고 귀때기청봉의 일화도 있다.

귀때기청봉은 제가 제일 높은줄 알고 으시대다가 대청,중청,소청 삼형제한테 귀싸대기를 얻어맞고 귀때기청봉이 되었다고.

피식! 소박한 전설일세. 

안개는 축축하게 밀려 올라온다.

이쯤 올라오고 나니 햇빛도 안개에 가렸고 바람은 차고 시원해서 가장 뜨겁다는 오후 두시 시간대인데도 더위를 못 느끼겠다. 

바위위에 잠시 머물면 서늘한 기운에 오싹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옷 껴입을정도는 아니고.말 하자면 그렇다는거지 뭐.

배낭때문에 통풍이 덜 되는 등줄기는 이미 푹 젖어 있는데 안 덥다는건 순 거짓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난 한계렁에서 대청까지가 6점 몇킬로 라는걸 어디서 본거야?

대충 잡아도 팔킬로가 넘는구만.

 산행이 슬슬 지겨워질때쯤 다행히 중청대피소가 안개속에서 나타났다.

눈에 뵈는것보다 조금 빠르게 사람들의 소음이 먼저 귀에 들렸으니 저곳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 어지간히들 떠 들었나보다.

꼭 그렇게 시끄럽게 떠 들어야 산행이 즐거운가?

나처럼 입 꾹 다물고 묵언 수행하듯 묵묵히 걷는것도 나름 즐거운데 말이지.

드디어 중청대피소를 지나쳐 대청으로 오른다.

보기에도 높아뵈지 않고 험해뵈지도 않으니 터덜터덜 걸어올라가면 될듯하다.

저곳에 오르면 어떤 풍경이 있을까,,,

안개가 쉼없이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데 풍경은 무슨 풍경인가.

그래도 여기가 "설악산 대청봉"인데 인증샷은 하나쯤 남겨야될듯해서 누군가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나도 사진한장 박았다.

머리에서 흐르는 땀이 눈으로 들어가니 어쩔수없이 버프를 머리에 둘러 아줌마패션이 되고 말았다만,

그런들 어떠하리.

그래도 기왕 사진 찍는거 활짝 웃어서 팔자주름이나 확 펴지게 할껄 싶다.

차라리 보톡스라도 한방?ㅎㅎ

 내려가는 길은 오색으로 항한다.

오색에서 한계령가는 버스가 5시15분이라고 하더라.그거 놓치면 6시차 있고.

세시가 조금 넘었으니 내리막길 5.5킬로를 부지런히 가면 5시15분 버스를 탈듯 싶었다.

어차피 내려가는길 경치구경이랄것도 없다.

끙!

그렇게 부지런히 내려왔음에도 오색분소에 도착한건 5시25분.

마침 입구에 택시몇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주말이면 늘 택시몇대쯤은 기다리고 있다니 버스 시간 맞추려고 기를 쓰고 뛰어내려온 내가 안쓰럽다.

만오천원.

버스보다야 무지 비싸다지만 산행마치고 피곤한 다리끌고 버스 기다릴수야 없지않은가.

 

9시15분에 한계령 휴게소에서 시작해서 오색분소 도착이 5시25분이니까 대략 8시간이 걸렸다.

쾌청하고 맑은 풍경을 보려면 겨울,

그것도 아주 추운날 다시 와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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