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안면도를 다녀온후
눈구경에 미련이 남아서 또 아내를 꼬셨다.
느즈막히 일어났으니 어제의 여독도 풀렸겠다 싶어 대관령을 안넘어가는 조건으로 길을 나섰다.
이번 동해안 폭설은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내륙쪽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같은 강원도지만 원주는 눈 구경도 못했으니 눈구경을 하려면 대관령쯤은 가 줘야 한다.
진부쯤 가니 조금씩 길가에 눈높이가 늘어간다.
횡계로 빠져나와 용평리조트쪽으로 들어서니 삼사십센티는 족히 쌓인눈을 치우느라
근처 군부대의 장비며 인원이 모두 동원된듯하다.
용평리조트로 들어가 꼭대기로 올라가는 곤돌라를 타려했더니 세시반이면 마감이란다.
너무 꿈지럭 거리다 출발했더니 삼십분쯤 늦었다.
원래 계획으론 걷기 싫어하는 마누라를 위해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 꼭대기까지 편안하게 올라가서
멋진 설경을 보여주려 했는데,,,
대관령은 안 넘겠다 약속했으니 대관령 꼭대기의 휴게소까지만 올라갔다.
구제역때문에 양떼목장은 개방을 안한다고 했으니 눈쌓인 황태덕장말고는 딱히 별다른 풍경이없다.
그저 눈 쌓인 풍경뿐.
온통 눈 쌓인 동산의 너른 벌판위에 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풍경정도면 꽤 괜찮은 풍경이다 싶지만
길가에 차를 세울수가 없다.
눈때문에 가뜩이나 좁고 미끄러운 도로에 차를 세우면 뒤따르는 차들은 위험할수밖에 없잖은가.
이래저래 대관령은 헛방이다.
차라리 해 지기전에 월정사 전나무숲의 설경이나 보는게 낫겠다 싶어 다시 월정사를 찾았다.
숲이 고요하다.
간간히 몇 사람 눈에 뜨이긴 하지만 그 정도의 흔적이야 오래된 숲이 감싸안을 터이다.
눈길을 걸었다.
눈 밟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린다.
아내는 차에 두고온 강아지가 맘에 걸려 짧은 숲길을 다 걷기도 전에 돌아가자 보챈다.
국립공원지역엔 동물을 데리고 들어가지 못한다.
혹여라도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까 싶어 금지하고 있단다.
치악산은 그렇게 심하게 통제를 하지 않는지 간혹 개를 데리고 산에 가는 사람도 있던데
이곳은 통제가 아주 심하다.
물론 잘 하는일이다.
기왕 잘 하는김에 산에다 귤껍질 버리는 사람들도 잡아 벌금 매기면 좋겠다.
페트병 버리는 사람들은 아예 유치장에 며칠 넣어둬도 좋겠고.
차장밖으로 담배꽁초버리는 사람은 몇달쯤 독방에 가둬야한다.
스님 몇분이 숲길로 걸어간다.
어딜 가시나.
아내는 스님들이 그냥 산책나온걸거라고 한다.
그말이 맞는거 같다.
멀리 가는 사람은 짐이 많아야 하는데 바랑하나 매지 않았으니 수양중에 산책나온모양이다.
스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길을 걸을까.
참선중에 들었던 화두를 여기까지 들고 왔을까.
아님 내 아내처럼 눈 밟는 소리를 즐기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보다는 아무 생각없이 걷는것도 좋지않을까.
비워내면 채우기가 좋은법이다.
죽은나무와 산나무가 나란히 서서 눈을 맞은 숲길은 고요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