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얼음찜질

치악동인 2011. 2. 15. 10:45

사일동안 얼음찜질을 주구장창 해댔으니

그쯤이면 얼굴이 얼어터질만도 한데 얼어터지진 않았다.

눈 아랫쪽의 멍과 부기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일요일까지 가라앉아야

월요일부터 일을 시작할테니 맘이 조급한가보다.

어딘가로 나가고 싶은 맘에 아내를 꼬드긴다.

"얼음찜질하는것보다 차라리 찬바람을 맞는건 어떨까?"

참 말도 안되는 논리인데 다행히 생일맞은 남편이 원하는일이라고

선그라스 챙겨들고 따라나선다.

방구석에서 개기는것도 답답했을테고.

 

가기 쉬운 동해안쪽은 눈이 와서 난리다.

1미터까지 눈이 왔다니 이런때 한계령을 가본다면 정말 환상적일텐데

너무 무모한 짓이다.

정작 눈이 많이 온 곳은 아수라장일텐데 그걸 구경하러간다는것도

사실 양심에 찔리는일이지.

그래서 눈이 많이 온다는 동해의 반대쪽 서해안면도로 향했다.

지난번 땡땡이는 낯시간이었으니 이번엔 제대로 꽃지 일몰구경까지 하리라,,, 

바람은 얼음찜질보다 훨씬 효과적일 정도로 차고 매웠다.

처음 도착한 해변에서 몇걸음 걸어보고는 후다닥 차로 들어가선 나올 엄두를 안낸다.

그렇게 추운게 싫으면서 며칠씩 얼음찜질은 어찌 했을까.

해안도로를 따라 자리잡은 해수욕장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겨울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연인들,학생들,개와 함께 뛰는 사람.

그걸 구경하는 나같은 사람.

그리고 그 바다가 생업인 사람들.

느긋하게 점심먹고 해변마다 발도장을 찍었건만 꽃지의 일몰은 아직 멀었다.

해가 한참이나 남아있었는데도 성급한 사진사들은 일몰포인트를 선점하고 삼각대위에

멋드러진 망원렌즈까지 장착한채 일몰을 기다린다. 

거센 파도위를 갈매기 몇마리가 연신곤두박질 친다.

나도 망원을 장착하고 아내를 차에 남겨둔채 해변을 갔다.

어린 학생또래로 보이는 연인들이 내게 카메라를 주며 부탁을 했다.

찬바람에 눈이 시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여자아이가 그런 날 보더니

 "아저씨 울지 마세요"

이런,,,허허,,

손도 시리고 눈물도 흐르는 와중에 갈매기 한마리가 사냥에 성공하는 장면을 담았다.

똑딱이로는 감히 엄두도 못낼 장면이니 카메라 장만한 보람이 있다.

나름.

대충 일몰시간에 맞춰 꽃지를 다시 찾았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정가득한 사람들은 이미 두시간쯤부터 해넘이를 기다린다.

오늘은 멋진 일몰을 보려나?

하지만 바다위로 꽤 많은 구름이 깔려있으니 지난번 궁평항처럼 허무한 경험을 할수도 있겠다. 

날이 너무 춥다.

삼각대도 없다.

창문만 빼꼼 열고 찍으려다가 두시간씩 추위에 떨며 기다린 사람들을 너무 욕보이는짓이다 싶어

나도 해변으로 나섰다.

할아비바위와 할미바위 사이로 해가 진다.

해는 뜨는것도 잠깐이지만 지는 것도 잠깐이다.

구름이 없으면 해가 바다를 넘어갈때까지 제법 오래 머문다는데 오늘은 구름때문에 순식간에 넘어갔다.

할아비바위 할미바위의 전설을 아내에게 들려줬다.

아내의 대답.

"바닷가에 가면 저런 바위들은 늘 있지 않나? 우리 동네앞에도 저런거 있었는데?"

맞다.

어느 곳에나 전설은 있고 절절한 사연도 있다.

사람도 그렇잖은가.

 

'혼잣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  (0) 2011.02.21
학부형 졸업  (0) 2011.02.19
에라이~  (0) 2011.02.14
이건 뭐?  (0) 2011.02.10
  (0) 2011.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