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산노미야 죽은놈이야

치악동인 2017. 9. 19. 17:16


간사이 공항에서 고베까지는 배를 탔다.

대부분은 버스를 이용한다는데 우린 찬이가 지루해 할까봐 배를 탔다.

공항나와서 오른쪽 끄트머리에 배표파는곳과 부두까지 가는 셔틀버스 타는곳이 있다.

그리고 다시 산노미야까지 가는 전철을 탔다.

일본은 전철노선이 꽤 많은데  장거리 노선에 국지노선으로 세분화돼고 노선별로 사업자가 달라서 우리나라처럼 환승이 안되고 역사도 다르다.

우리나라의 마을버스 같은 국지노선으로 고베에서 산노미야로 이동했다.

역시 국가기반시설은 국영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국영이 아니더라도 우린 민영사업자의 고속도로도 하이패스 통과하는데 왜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을까?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다녀와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아내는 나 몰래 삼십만원 정도를 따로 가져갔단다. 쇼핑용으로.

항공권과 숙박은 딸아이가 다 미리 결재를 했으니 현지에서 먹는것과 교통비,입장료 정도만 준비하면 될일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쇼핑이라는 변수가 있다.

게다가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선진국,좋은 품질의 물건들이 많은곳이라고 세뇌되어 있는 곳이다.

아주 오래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이 지긋한 양반들은 "일제" 타령을 한다.

물론 좋은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쇼핑에 목적을 둘 만큼 일본이 매력적일까? 하긴 사람 나름이겠지.


난 공돌이다.

일제 공구는 물론이고 일본식의 공구이름이 우리 산업 전반에 걸쳐 깊숙히 자리햇다.

난 가급적 일본식 이름을 우리나라 또는 정확한 영어표현으로 쓰고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나와 같은 노력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금형업계에서는 이제 거의 일본어가 사라졌다.

일제 공구를 많이 쓰기는 하지만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면  달라진다.

품질로 따지면 일제 공구 보다는 독일제가 더 좋다.

미제는 섬세하지는 않지만 내구성이 좋다.

우리나라꺼?

다 그렇지는 않지만 싸고 좋은것 많다. 제값주고 비싼물건 사면 국산품이  성능도 좋고 as도 좋다.

꼭 싸구려 사놓고 비싼 외제와 비교한다.

이제 외산품은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환율의 문제다.

엔화가 오르면 독일제를 선호하고 엔화가 떨어지면 일제를 선호한다.

가성비를 따져야지 단순 품질의 문제는 아니란거다.


"산노미야"라는 지명이 참 안외워 진다. 나도 늙은게다.

그래서 산놈이야 죽은놈이야 해 가며 외웠더니 딸아이가 배를 잡고 웃는다.

"三宮" 이라는 한자 표기로 읽기는 하는데 "산노미야"는 쉽게 말로 기억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찌 니 산 시,,"를 떠 올렸다.

딸아이가 네살쯤 되었을때 처제가 우리와 함께 살았다.

처제는 일본어를 속성으로 공부하고 호텔의 전화교환으로 일하던때라 딸아이가 자연스레 "이찌 니 산 시 "를 외우고 다녔다.

전철안에서 딸아이한데 "산노미야가 있으면 이치노미야 니노미야도 있겠네? 맞다 니가 패스 끊어놨다는 로코산도 한자어로는 육갑산이더라"

그제서야 산노미야가 외워졌다.

산노미야 역 앞에 상가 밀집지역에서 레드락이라는 식당을 찾았다.

스테이크집인줄 알고 들어갔더니 그곳은 덮밥이 더 맛있다고 점원이 안내한다.

달랑 밥공기에 거의 익히지 않은 얇은 소고기를 얹고 덜익은 계란을 올린 덮밥을 주는데 밥 한공기 외에 주는거라곤

딱 젓가락 한벌뿐이다.

아내는 이렇게 덜 익힌걸 어찌 먹냐고 투덜대고 난 단무지도 안주냐고 투덜댔다.

나중에 길을 돌아다니다가 다른곳에 있는 레드락을 봤다. 그곳이 스테이크 전문점 레드락이었다.

일본은 메뉴가 다른 같은 이름의 음식점이 여러곳에 있고 심지어 같은 건물에도 있다.

고베규로 유명한 이시다야도 삼층 본점은 철판구이고 5층인가 6층은 숯불구이다.


투덜투덜 덮밥으로 점심을 떼우고 거리구경을 하며 붕어빵을 몇개 샀다.

한개에 무려 이천원정도 하는 엄청난 가격인데 팥소를 만드는 수고로움이 그만한 가격을 인정하게 한다는 사위의 설명이다.

음,,, 우리나라 붕어빵은 천원에 세개쯤 할껀데,,,맛도 좋은데,,,

아내는 골목안의 악세사리 가게에서 귀걸이 이것저것을 골랐다.

덧나지 않는 재질이라는 말을 믿고서.

그 악세사리 가게 주인은 자주 한국을 방문해서 물건을 구해온단다. 그럼 지금 골라놓은 것들이 혹시 한국산이린건가?

아내의 기분을 잡치게 하고 싶지은 않아서 그냥 뒀더니 재질불분명한 귀걸이를 십만원 어치쯤 샀다.

야경이 이쁘다는 메리켄파크로 가는 길목에 차이나타운이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려 만두 몇개를 사왔는데 한입 베어무니 육즙이 주르륵 흐르도록 풍성했다.

하지만 만두속이 본격적으로 입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인상이 절로 찌푸러진다. 짜다! 엄청!

찬이는 시장 이곳 저곳을 뛰어다닌다.

난 혹여 부딪치거나 넘어질까 그 뒤를 따른다.

특히 여자들이 찬이 염색한 파마머리에 관심을 많이 보낸다.

발끝을 들고 팔을 살짝 쳐들고 엉덩이를 통통 튕기며 녀석이 뛰어가면 웃음이 절로 난다.

나만 웃는게 아니다.

지나는 사람들도 찬이의 모습을 보면 절로 웃는다.

이 사랑스런 모습을 보며 미소짓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분명!


그런데 잘 놀던 녀석의 표정이 심상찮다.

저 표정은,,, 어이쿠!쌌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 주변의 화장실을 찾았지만 도무지 없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찾는 곳에 공중화장실이 없다? 진짜 없다.

찬이아빠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예의에 신경을 쓴다.

길거리에서 기저귀는 간다는건 상상할수도 없다. 나도 물론 길거리에서 갈아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화장실이 없는걸 어쩌란 말인가.

가게 옆의 골목으로 들어가 불투명 썬팅된 유리창을 확인하고는 기저귀를 갈았다.

화장실 문제는 곳곳에서 발생햇다.

하다못해 건담을 사려고 들렀던 대형상점에서도 화장실을 찾았더니 이곳에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황당했다.그럼 당신들은?

우리도 그런 문제가 없는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건물은 개방형으로 되어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주 큰 공중화장실이 곳곳에 있다.

더구나 내 가게에 들어온 손님에게 이곳에 화장실이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메리켄 파크에서 산노미야로 돌아와 잡화점을 들렸다.

딸아이가 이곳에서 살게 많단다.

내 보기에도 참 다양한 물건들이 많다.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것들.

어찌보면 쓰잘데기 없는것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조금 더 특별한것이나 내게 맞춤인 것들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보다.

찬이는 상점안에 있는게 답답해 보이고 찬이보다 내가 더 갑갑증이 들었다.

쇼핑하라 두고 찬이와 비가 시작된 길거리를 배회한다.

퇴근 시간이 되자 길거리가 시끌벅적해졌다.

여기도 불금인게다.

난 일본인들이 하도 조용조용하고 예의를 중시한다고 해서 길도 조용할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호객꾼들의 큰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가라오케 호객꾼들은 커다란 안내판을 치켜들고 소리를 지른다.

음식점 앞에서는 메뉴판을 들고 호객을 한다.

우르르 몰려나온 직장인으로 보이는 무리들도 웃고 떠든다.

정말 소란스럽다.

그래도 사람사는 동네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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