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특별한 날

치악동인 2013. 10. 15. 10:31

 토요일 아침부터 난 맘이 급하다.

딸아이가 남자친구를 데려와 인사시킬때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쪽 집에 인사 다녀와서 빨리 부모님끼리 인사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을때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문경에서 여섯시에 상견례가 잡혔다.

네시에 출발을 하려면 두시까지 고구마를 캐고 씻고 복장을 갖추고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마련해서 출발해야지,,,

뭘 살까?

부담스럽지도 않고 내 사는곳과 관련이 있는건 뭘까?

그런 생각은 며칠전부터 혼자 했다.

그래서 내린 선물목록은 두가지.

치악산 큰송이 버섯 또는 감자만두다.

 

 이곳은 김천의 직지사다.

구미에서 오후 시간을 메우려다 보니 문득 이곳의 이름이 생각나서 찾아왔다.

사찰내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최고라는 절이다.

 

고구마를 캐려던 계획은 밭에 도착해서 수정했다.

어느새 팥꼬투리가 익어서 벌어지는것들이 보였다.

누군가 마르지 않은 팥꼬투리를 따서 풋팥을 밥에 얹어먹으면 맛이 기막히다는 소릴 들은터라

팥 꼬투리부터 따기 시작했다.

팥은 꼬투리가 익기 시작하면 스스로 벌어져 팥알을 땅에 다 쏟는단다.

게다가 비닐멀칭한곳에 제대로 심은 팥은 고라니가 잎을 다 먹어버려서 아무것도 안 달렸다.

감자캐고 나서 대충 뿌려놓은 것만 몇그루 살아남아 꼬투리가 달린 정도이니 수확이고 자시고 그냥 눈에 뵈는 꼬투리만 뚝뚝 따서

작은 양파망에 담기 시작했다.

고구마도 얼른 캐야 하는데,,,

 직지사 경내 풍경은 우선 다른 절에 비해 전각과 전각의 공간이 넓고 경내에 나무가 많다.

아주 오래된 나무들이다.

평지이면서 흙길이라 걷기 편하고 나무가 많으니 공기도 상쾌하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거보니 소문이 그냥 나진 않았나보다.

 

별로 건질게 없을것같은 팥인데 작은 양파망으로 거의 세자루를 채웠다.

물론 꼬투리채니까 팥알로 치면 한됫박이나 되려나 모르겠다.

팥 한됫박 사다 심었는데 수확이 한됫박이라니 참,,,

고구마 한고랑을 캐야하는데 벌써 열두시가 되어가니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절대 한고랑 다 수확은 안되겠지만

일단 줄기부터 걷어내기 시작했다.

비닐은 캐면서 걷다가 다 못캐면 덮어둬야 하니까.

 

열두시가 넘어가면서 상견례가 불과 몇시간 남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상견례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건 너무 이른데,,,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딸이 갑자기 미워지기 시작했다.

내 나이 이제 겨우 오십인데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난,,,

너무 허전해,,,

 아들이 없으면 허전하지 않냐는말 허투로 들었다.

지금까지 딸하나만으로도 난 하나도 아쉽거나 허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내기 전 단계인 상견례다.

그 집에서 아주 맘에 들어한다니 특별한 돌발 상황만 아니라면 오늘 저녁이후로 결혼은 급진전 될게다.

벌써부터 내년 삼월쯤으로 지들끼리 얘기를 한 모양이니 그리 되겠지.

 

주머니에서 두시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두~시!"

우리 식구들은 내 핸드폰에서 정각을 알리는 아이 목소리가 들릴때마다 그 목소리가 화난 목소리처럼 들린다고 했다.

내 듣기엔 그냥 아이 목소리로 들렸구만.

아! 맞구나. 이 아이 목소리는 화난 목소리가 맞구나.

밭고랑 삼분지 일도 다 못캐고 작업을 정리했다. 고구마는 겨우 한박스 남짓 되겠다.

아직도 한고랑이 온전히 남아있고 캐던 고랑까지 마저 캐면 앞으로도 일곱박스는 더 나오겠다.

올해는 직원들도 조금씩 나눠줄수 있겠고 제천 친구들한테도 한박스씩 줄수 있으려니 싶다.

직지사 대웅전이다.

좀 더 멀리서 좀 더 높은곳에서 나무와 함께 담으면 좋은 풍경이 나올듯 하다.

군데 군데서 사진좋아하는 사람들이 포진한채 나름 좋은 풍경을 담아보려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기왕 절에 온거 삼배라도 올리려고 대웅전 으로 들어섰다가

아주 오래된 마룻바닥을 밟아보니 이 절이 아주 오래된 절임을 알겠다

 

두가지 선물중 버섯은 다음을 위한 카드로 쓰고 이번엔 감자만두로 했다.

감자로 만두피를 만든건데 지난 여름에 처음 먹어보니 가벼운 선물용으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만두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강원도 냄새가 나지않을까.

난 강원도 사니까.

네시에 출발하자고 누누히 말했건만 마누라도 딸도 도무지 급한게 없다.

네시십오분이 넘어가고 있는데 마누라가 다시 가게로 들어간다,

"왜 또?"

"응. 돈 챙겨가지고 갈께"

왜 한번 움직이는 동선에 그런걸 챙겨들지 못하는걸까.

기어이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난 첫만남부터 지각하는꼴 같은건 보이고 싶지 않다고.

 

내 딸의 시부모될 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좋은 부모아래서 잘 컷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 딸에게 함부러 하지 않을테니까.

그런 욕심때문에 일반 썬크림 대신 비비썬크림을 발랐다.

그 썬크림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화장도 불사할 만큼 난 잘 보이고 싶었다.

외모로 잘 보이는게 무슨 소용일까마는  첫인상이라도 좋으면 더 잘 풀리는 법이니까.

 

상견례는 잘 끝났다.

시어머니 되실분이 편안하고 좋은 인상이시다.

시아버지는 술 좋아하고 격식 갖추는걸 좋아하신다.

사돈맺기로 하고 과하지 않을만큼의 술잔도 나눴다.

 

이젠 보내야 겠지.

 

 

'발길을 멈추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함백산  (0) 2014.01.27
주산지 참상  (0) 2014.01.07
횡성 코스모스  (0) 2013.10.01
창고를 뒤적여 꺼낸 소쇄원  (0) 2013.09.30
닭갈비 골목  (0) 201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