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니나 먹어라

치악동인 2010. 2. 22. 12:59

명절이후로 일이 밀려서 무지 바쁘게 한주를 보냈습니다.

토요일까지 일하고 났더니 일요일은 그냥 뒹굴뒹굴 하고픈 마음뿐인데

창문을 부서져라 밀고 들어오는 햇살이 날 유혹합니다.

예약손님때문에 출근하는 아내랑 아침먹은 설겆이 거릴 담가둔채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동계올림픽 하이라이트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스키점프 선수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숏트트랙은 앞선수의 엉덩이를 밀쳐내기위한

힘겨운 몸부림을 하다가 우르르 넘어지기까지 하니 햇살의 유혹이고 뭐고

다 잊었습니다.

순간,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게으름을 부리던 얀이가 펄쩍 뛰어 현관으로 달려갑니다.

가게에 내려간 마누라가 반찬통 하나를 들고 들어서며 잔소리를 해댑니다.

"이게 뭐야,,,찌게그릇은 덮어놔야지 냄새가 안나지~!"

바닥에 깔린 김치찌게를 아예 버리고 씻을 생각에 뚜껑덮는걸 깜빡했습니다,,,

에구,,,

얼른 분위기 전환을 해야지요.

"손에 든거 그게 뭐야?"

"오늘 업스타일 손님이 떡 가져왔어"

손님이가져온 찰떡 몇조각과 전을 나눠 담아서 가져온걸 보니 딱 도시락하나입니다.

결국 도시락에 무너진 나는 벌떡 일어서며 분주히 설겆이를 끝내고 배낭을 울러맵니다.

점심은 찰떡 도시락이고 간식은 팥 양갱 열개쯤 챙겼으니 물 두병만 챙기면 준비 끝입니다. 

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평평한 헬기장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점심식사중입니다.
헬기장뿐아니라 몇사람 모여앉은 자리만 되면 자리를 펴고 밥을 먹는데
지나는 사람에겐 음식냄새가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산에 오면서 먹을거리 참 많이 가져오나 봅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입에선 술냄새까지 풀풀 풍기니 살짝 짜증이 납니다.

날이 따뜻해서 두텁게 쌓인 눈은 푸슬푸슬 녹아가는 중이라 아이젠을 차고도 내리막은 줄줄 미끄러지는데

술까지 마시고 산행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이꼭대기까지 구조하러 오는 사람은 뭔 죄랍니까.

비로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에선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의 교행으로
정체까지 빚어지니 앞사람 엉덩이를 내 머리로 밀고 올라갈판입니다.

내 앞에 엉덩이 큰 아저씨가 슬며시 방귀라도 뀌는 날이면 난 죽습니다.

그래도 앞사람이 남자이니 다행입니다.

만약 여자였다면 간격에 신경바짝 써야 할판이지요.

고개 숙이고 걷다가 남의 아주머니 엉덩이에 머리박았다가 뭔 오해를 받을라고요.

치악산 비로봉에 올때마다 정상부근에서 까마귀들을 만납니다.

오늘은 정상을 점령한 사람들을 피해 정상 한켠의 후미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사실은 사람들이 먹다 남겨진 음식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기다리는건 까마귀만이 아닙니다.

참새처럼 작은 새인데 아마 박새같은게 아닐까 짐작됩니다만 그놈들은 입이 고급입니다.

김밥을 돌위에 올려 놓으면 포르륵 날아와서 가운데 박힌 햄만 쏙 빼 먹습니다.

이놈들은 사람들이 멀리 떨어졌을때 날아오기라도 하지요.

구룡사앞에 자리잡은 새들은 손바닥위에 쌀알을 올려 놓으면 사람 손위의 쌀알도 겁없이 집어 먹습니다.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에게 길이 든다는건 때론 무서운 일이지요.

어린왕자는 자신에게 길들었다는 이유로 결국 자신에게 상처를 준 장미에게로 돌아가야했잖아요.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나도 도시락을 펼칩니다.

참 간소한 점심입니다.

찰떡 몇 조각,메밀전 몇조각,그리고 동그랑땡같은 전 몇개.

차가운 음식이지만 비장의 한수 뜨거운 녹차가 있어서 그리 차진 않습니다.

혼자 앉아 먼 산들을 바라보면 점심을 먹을땐 혼자라는데 조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내가 혼자 밥을 먹느라 외롭던 말던 정상에선 좋은 자리를 잡아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무지 소란스럽습니다.

한 사람이 찍고 나면 똑같은 자리에서 또 다른 사람이 거의 똑 같은 자세로 찍습니다.

함께 온 일행이 모두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는듯이.

경상도 사투리도 들리고 전라도 사투리도 들립니다.

어쩜 그사람들 사진속엔 등돌리고 앉은  어떤 남자의 모습이 돌부처처럼 찍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겨울 내내 산꼭대기엔 꽤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계단에 쌓인눈은 미끄럼틀이 되어버려서 어떤 아저씨는 맨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버렸습니다.

펑퍼짐한 엉덩이 자국은 금새 사람들 발길로 감춰집니다.

어떤 사람들이 지나가며 얘기합니다.

"생전 안 녹을거 같았던 눈이 녹네"

아마 한겨울에도 몇번 와 봤던 사람들인가 보네요. 

햇살이 쨍쨍해서 장갑을 안 끼어도 손 시려운줄 모르겠으니 이 많은 눈도 금방 녹아 내릴겁니다.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가는길은 능선길보다 눈이 훨씬 더 많이 쌓였을겁니다.

난 올라온길로 다시 가야하니 능선으로 내려갈랍니다.

내려가는길은 올라올때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이 녹아서 흘러내립니다.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능선길을 다 내려왔을즈음,

길가에서 푸드득 대며 눈속의 낙엽을 뒤지는 새를 만났습니다.

갈림길인지라 누군가 앉아 쉬면서 귤을 까먹고는 아주 "친절하게도" 짐승들 먹으라고

귤껍질을 흩뿌려놨네요.

그래서 새 에게 물어봤지요.

"어이~ 새! 넌 왜 감기에도 좋고 비타민도 많다는 귤껍질이 저리 널렸는데 눈밭에 낙엽을 뒤지냐?"

그랬더니 새가 모가지를 외로 꼬면서 한마디 뱉습니다.

"니나 먹어라 귤껍데기"

정상에 있던 길들여진 새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고자세입니다.

맞습니다.

산짐승들 귤껍데기 안먹습니다.

더더욱 사탕껍데기는 절대 안먹습니다.

그건 쓰레기일뿐이지요.

 

다 내려왔는데 앞에 가던 한무리의 일행중에서 한사람이 뒤로 쳐지더니 무릎을 접었다 폅니다.

아무리 봐도 무릎에 이상이 있는듯합니다.

"무릎이 않좋으세요?"

"네,,,조금"

작년 산악자전거대회때 쥐로 된통 고생한이후 내 배낭속엔 쥐잡이용 파스가 한통있지요.

한번도 쓴적없는 파스라 아깝긴 하지만 그 사람 무릎에다 흠뻑 뿌려줬습니다.

거진 다 내려왔으니 이 정도면 주차장까지 걸어갈만 할겝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하고 내려오면 난 슬쩍 웃습니다.

'하느님 봤수~?나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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