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일출사진을 찍겠다고 맘 먹었지만 그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마누라 눈치보는건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맑은 해돋이를 보여주는건 전지전능하신
오로지 하느님만의 능력이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과 통하는 재주를 갖지 못했으니 일기예보에나 의지할밖에.
강릉은 새벽에 눈이 올 가능성이 있단다.
최소한 눈은 안오더라도 구름은 끼인단 얘기인데 따라서 일출은 글렀다.
언젠간 내게도 기회가 오겠지.
기왕이면 일박이일 출장기회에 하느님도 한 부조했음 좋겠다.
그럼 오늘은 뭐 한다?
지난 연말에 실패했던 백로 사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집에서 가깝고 오늘 날씨도 맑은듯 하니 삼각대까지 챙겨 가보자.
옷도 단단히 입었다.
갈대밭에 매복이라도 할 작정으로 갔고 살금살금 갈대밭으로 내려가 몸을 낮추고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었다.
쪼그려 앉으면 다리 저릴까봐 방석도 챙겼으니 완벽한 준비다.
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위장막까지 덮어쓴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난 비전문가니까.
그런데,,,
백로는 다 어디가고 오리들만 둥둥 떠 있는고?
오리와 백로를 내 잣대로 귀한놈 하찮은 놈으로 규정짓자는것은 절대 아니다.
내 초라한 망원렌즈는 겨우 200밀리짜리다.
그러니 작은 덩치의 오리보다는 큰 덩치의 백로를 찍어야 그래도 그림이 될거 아닌가.
백로는 너무 멀리 있다.
지금 자리 잡은 곳이 제일 구도가 좋은듯해서 참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엉덩이 털썩 붙이고 앉아서.
그런데,,,
웬 할아버지 두분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시더니 강변으로 내려오신다.
아.낚시꾼이다...
내 몸하나 숨죽이고 있어도 새가 안오는데 낚시꾼까지 나타나는데 백로가 바보도 아닐테고,,,
이런 상황에서 미련 떨고 새를 기다린다면 난 추위에 떨게 될테니 이럴땐 철수가 답이다.
강 중간에 바윗돌이 하나 크게 자리잡고 있는곳에 오리들도 잔뜩 몰려있다.
아마도 사냥하는 중간중간 쉬기 좋은 자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리와 원앙만 있던 곳에 덩치 큰 왜가리가 한마리 날아와서 당당히 선다.
작은놈들 틈에 큰 놈이 짝다리를 짚고 서 있으니 이놈 폼이 영락없는 일진 폼이다.
요즘 학교 폭력이 아주 심각하다지?
그런데 저 왜가리 녀석이 짝다리를 짚고 서있건 말건 오리들 신경도 안 쓴다.
우리의 학교도 그래야하는데 어째 이리 시끄러울까.
오리의 무신경에 삐친 왜가리는 강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리는 연신 주둥이를 물속으로 박아 넣는다.
그런데 일진 폭력은 없어도 왕따는 이들 사이에도 존재하는가 보다.
우르르 몰려 있는 녀석들과 뚝 떨어져 있는 녀석들도 있다.
여기.
알수없는 놈들이다.
종이 틀리고 덩치가 틀린데 왕따끼리 위로라도 하는지 백로와 오리가 붙어 있다.
심지어 같은곳을 보고 있는거보니 혹 부부인가 착각도 든다.
에이~설마?
오늘도 멋진 백로 사진은 실패로 끝났다.
어쩌면 내 망원으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빠백통이니 하는 대포만한 렌즈를 쓰는 사람들이 보면 웃을일이지.
200미리 렌즈로 새 사진을 찍어?ㅎㅎㅎ
그래도 오늘 중요한 증명을 하나 확인했다.
물위를 걷는 방법이다.
난 어렸을때부터 물 위를 걷는 방법에 대해 주장해왔다.
한발이 물에 빠지기전에 다른 한발을 딛는것이 그 방법인데 이렇게 쉬운 방법을 증명해 낼 길이 없었다.
원래 과학적 사고는 주장에 증명이 필요한거다.
그 증명을 오늘 오리들이 보여주었다.
보라.
물위를 걷는 오리는 한발이 빠지기전에 또 한발을 딛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