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개털이 휘날리는 우리집에 고양이털까지 합세를 했다.
터키시앙골라종의 장모 고양이다.
개털보다 가늘고 보드라워서 옷에 붙으면 쉽게 털리지도 않고 손으로 집어 떼어 내기도 쉽지않다.
털 때문에 어떡할거냐는 엄마아빠의 걱정때문에 딸아이는 미용을 택했다 .
얀이는 여태 애견샾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우리개가 애견샵에 가면 주인이 웃을거다.
어쩜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쁜개가 미용을 해야 고생한 보람이 있지 우리집 못난이는 수고한 보람이 없을테니까.
어쩌면 애견샆 주인은 절망할지도 모른다.
하다하다 똥개까지 미용을 하게되는구나,,,
지금껏 얀이 미용은 그냥 털을 깍는 수준이었지 결코 미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보리는 확실히 미용이 맞다.
하지만 미용의 댓가가 너무 크다.
마취가 풀리는 몇 시간동안 놈은 혀를 메롱 내밀고 마구 비틀비틀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보리의 입성을 가장 경계하는건 얀이다.
보리줄려고 산 태엽감는 쥐를 얀이가 덥석 물어 침을 발라놓고는 지 장난감이랑 한군데 모아놨다.
아마 보리가 저 장난감을 탐냈다간 딸아이의 비명소리에 지구가 흔들릴거다.
보리의 목덜미엔 뻐드렁니의 얀이 이빨자국이 날테니까.
다행이 보리는 얀이의 장난감을 탐내지 않았다.
발걸음도 조용하게 그리고 사뿐사뿐 거실을 가로질러 우리방 침대위로 올라섰을뿐이다.
다리짧은 얀이는 후다닥 후다닥 도움닫기를 몇차례 시도해야 올라오는 침대위로
연체동물처럼 부드럽게 올라서서 얀이를 내려다봤다.
얀이가 방안에 있을땐 보리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만 이미 보리가 들어가 있을땐 안방침입을 용인했다.
처음엔 두놈이 거실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릴때마다 보리의 등이 긴장으로 휘어졌다.
조금 지나면서 보리의 긴장은 풀어졌고 주인의 옆자리만 아니라면 얀이도 보리를 위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난끼많은 보리가 얀이를 먼저 괴롭혔다.
딸아이의 표현대로라면 보리의 앞발이 광속의 스피드로 얀이의 쌍싸다귀를 타다닥 날렸다.
게다가 높은곳을 항상 선점하는 보리는 얀이가 저보다 아랫쪽을 지날때마다 흔들리는 얀이 꼬리를
신기해하며 건드려보곤 했다.
얀이의 뻐드렁니는 이제 위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보리는 이제 수컷이 아니다.
중성화 수술후 하룻동안 놈은 식음을 전폐하고 창가에 올라앉아 잠만 잤다.
가뜩이나 불쌍한 놈이 수술전 검사에서 선천적인 심장병이 확인됐다.
판막에 구멍이 있단다.
수술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천만원대의 수술비도 문제고 막상 정밀 검사를 진행해서
판막의 구멍크기에 따라 수술 가부가 결정된다니 난감이다.
동네병원에서 진행할 상황이 아니니 대학병원을 전전해야하는데 시간과 돈 모두 문제다.
다른 사례를 찾아보니 선천적인 심장병을 안고 태어나는 고양이가 제법 있는데,
천형을 안고서도 아주 잘,오래 산단다.
그걸 믿고 당분간 투약에 의존할 생각이다.
다행히 아직은 아무런 이상증세도 없고 활발하게 잘 논다.
미친듯이 거실을 콩닥거리며 뛰어다니고 부스럭 소리만 나면 어느 높이든 뛰어올라와 눈 높이를 맞춘다.
비닐봉지만 펄럭이면 기어이 봉지안에 들어앉고 서랍을 열면 서랍속에,
세탁기를 열면 세탁기속에 들어 앉는다.
커텐줄에 매달리기 좋아하고 살랑살랑 흔들리는것에 관심이 많다.
병뚜껑으로 현란한 드리블을 하다가 어느샌가 한구석에서 잠든다.
가을 햇살에 보리의 심장병이 저절로 나아질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