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일보고 김해로 가는중
약속이 취소됐다.
어차피 그쪽으로 접어든거 이참에 가을 억새구경이나 해야겠다.
김해를 거쳐 대구쪽 방향으로 가다보면 창녕 화왕산이 나온다.
내 기억으론 별로 높지않은산인줄 안다.
오후시간정도면 충분하리라 싶었다.
다만 몸상태가 그다지 좋지않은게 문제인데,,,
일요일 저녁부터 갑자기 시작된 메스꺼움과 장염증세,그리고 오한.
지옥같은 일요일밤을 보냈다.
기어이 월요일에 링거한방을 맞고서야 겨우 오한에서 벗어나고 장염증세도
천천히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먹는게 조심스러워 월요일저녁 퇴근하면서 죽한그릇 사서 그걸로 저녁과 아침까지 떼웠다.
출장지에서 죽집을 찾으려다 포기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굴국밥으로 점심해결했다.
이 몸으로 산에 준비도 없이 올라간다는게 좀 그렇긴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시간이 생길까.
가을은 이미 막바지다.
단풍이 낙엽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데 억새인들 마냥 빛나고 있진 않을터였다.
올라가보는데 까지 올라가보지.
평일 오후라 그런지 산입구는 조용하다.
다행이다.
물 한병만 챙겨들고 천천히 걸어올라간다.
올라가는길은 소나무가 울창하다.
혼자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면 소나무숲속은 투둑투둑 빗방울 듣는듯한 소리가 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떨어지는 무언가를 눈으로 쫒지만 뵈는것이 없다.
아마도 솔방울에서 솔씨가 떨어지는 소리인가보다.
조용한 산에서 내 발걸음을 멈춰야만 들을수있는 소리중 하나다.
억새는 정상에서 서남쪽 능선으로 넓게 퍼져있다.
이미 빛을 잃어가는 상황이라 보기에 초라하다.
딸아이와 함께 갔었던 민둥산 억새보다는 영 못하다.
하긴 시들어버린 꽃과 낙엽이 된 단풍과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그저 추억으로 아름답지.
가을풍경중에 가장 내 눈을 홀리는건
도로변에서 햇살에 하얗게 빛나며 흔들리는 억새다.
우리 할아버지 은빛수염이 생각나게 하는 하얀 억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