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아침
쌀 세포대를 어깨에 둘러매고 법당의 계단을 끙끙대며 올랐습니다.
대보름날의 풍습이 부럼 깨물고 귀밝이 술마시고
깡통에 불쏘시개 담아 망우리만 돌리는건 아니었나봅니다.
고등학교때 학생법회에 속하여 우암산 용화사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법회도 참석하고 철야정진 천팔백배도 해보고 수없이 많은 연등도 걸어봤지만
정월대보름에 절에서 삼재풀이란걸 하는줄은 몰랐어요.
올해는 나와 딸아이, 그리고 손아래 처남이 삼재가 들었답니다.
불가에서 삼재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수없으나 중요한건 어떤 형식이 아니라
그걸 믿고 의지하는 이에게 어떤 행위로든 풀어냈다는 안도감을 갖게 하는게 중요하지요.
왜 이런걸 절에와서 해야하는지 마음으로 수긍하지 못한 나는
맘속으로 투덜거리며 법당을 올라섭니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작은 법당에 이미 가득합니다.
법당 천정엔 지난 부처님오신날 매달아둔 연등들이 갖가지 소원과 함께 매달려 있습니다.
혼자 속으로 꿍시렁댑니다.
'복은 누가 주는게 아니라 스스로 짓는거라던데,,,'
누가 삼재라는 풍습을 만들어냈는지 몰라도 참 빠져나갈길 없이 잘 만들었습니다.
이건 분명 부처님 작품이 아니거든요.
드는 삼재가 있고 나는 삼재가 있고 묵은 삼재가 있다고?
그럼 삼재 안드는때는 언젠공?
세식구중에 두식구가 삼재가 들었다고 끌탕인 마누라는 기어이
점집을 찾아갔습니다.
가게 이사할때 가고 이번에 가는거니까 근 오년만에 가는거긴 하지만
점집 가는건 지난번이 마지막이라고 나랑 약속까지 굳게 하고는 기어이
한번만 더 가야겠답니다.
그러더니 커다란 혹 하나를 달고 왔습니다.
우리식구 운세를 보다보니 요양병원에 계신 장모님도 아닌
건강한 손아래 처남이 올해 무지 위험하다는 점괘가 나왔다는군요.
삼재도 믿지말고 더우기 점쟁이말은 더더욱 믿지말라는 내 말은 귓등도 못 올라가고
휘휘 내젓는 손바람에 팔랑팔랑 날아갑니다.
그리곤 나더러 높은곳에 가지말고 장거리 출장길 조심하랍니다.
그거야 당연한 말씀이긴 한데,,,
높은곳에 가지말라는건 산악자전거를 타지말라는 얘기로 이어지니
그나마 눈꼽만한 자유마저 박탈 당하게 생겼습니다.
돈은 벌어야 하니 출장마저 가지말라고는 안하네요.
아내는 나보다, 딸아이보다 올 한해 무지무지 안좋다는 막내처남때문에
걱정이 태산입니다.
점쟁이 말에 뭘 그리 신경쓰냐는 내 말에 뽀족하게 쏘아 부칩니다.
"당신은 형제 먼저 보내봤어? 오빠 둘이나 먼저 보낸 내 심정 알아?"
아내는 십여년전 바로위의 오빠를 잃었고 작년에 그 위의 오빠를 또 잃었습니다.
그 심정을 내가 다 알리는 없겠지요.
난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
하자는데로 해야지요 뭐.
아내가 절에 다니게된 계기도 오빠를 잃은 십여년전부터이니
그때의 충격은 시아버지 돌아가신것과는 차원이 다른일인가 봅니다.
울 아버지 돌아가시고 났을땐 절에가자 소리 안하더니 오빠 돌아가시고 나선
절집을 찾아 시주를 하고 엎드려 절을 합니다.
맘 속으론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내색할필요는 없습니다.
난 그저 우리 가족의 안녕만을 욕심내어 빌면 됩니다.
천정가득 주렁주렁 매달린 연등처럼 나도 내 욕심을 법당에 가득 채울뿐입니다.
이제 정월달도 다 지났으니 내 아내의 걱정도 한달만큼은 줄어들겠습니다.
아무래도 올 한해는 마누라 잔소리 엄청 들어야 할듯합니다.
내 자전거 녹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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