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가을 실감

치악동인 2009. 9. 1. 14:17

오늘도 점심 후다닥 먹고  차 트렁크에서 신발을 꺼내 바꿔 신습니다.

점심산책용 싸구려 등산화지만 벌써 몇년째 꺼떡없이 잘 버텨주고

미끄러짐도 없습니다.

악천후때는 조금더 기능이 있는 신발을 신어야하지만 점심산책이야

미끄러짐만 없으면 돼요.

뱀 쫒으려면 지팡이는 필수.

거미줄때문에 벙거지 하나 덮어쓰면 아주 좋아요.

오늘은 어제 모기때문에 울퉁불퉁해진 목덜미를 보호하려고 버프까지 푹 덮어써서

스카프대신 했지요.

그리고는 모기 기피제를 칙칙~마구마구 뿌려줍니다.

머리통,목덜미,얼굴은 조금 멀리서 칙~

어깨며 등때기,엉덩이가 모기의 주요 공격대상이니 그곳들은 조금 진하게 칙~

특히나 나의 통시리한 엉덩이를 잘 보호해야해요.

산모기들은 얇은 여름옷 정도는 쉽게 뚫는답니다.

그럼 산책준비 끝!

오늘은 가을을 실감하러 산으로 갑니다.

어제 바람에 떨어진 도토리며 밤알들을 봤거든요.

 

우선 산책길 초입의 나무계단은 사뿐사뿐 뛰어올라가줘야해요.

몇계단 되지도 않지만 그정도만 뛰어올라가줘도 숨은 적당히 가빠지고

등줄기로 땀이 촉촉히 배어나거든요.

그래야 양지바른 산소들이 있는 언덕에 올라섰을때 가을 바람을 느껴볼수있답니다.

칡꽃향기와 풀들이 말라가면서 내는 풀향기들이 바람에 섞여 내 속으로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가을실감이 안나요.

발걸음을 서둘러 보지요.

 

이런~!

누가 내 벙거지를 벗겨가나 했더니 칡넝쿨이 그랬네요.

머리를 숙인다고 숙였는데도 더 깊숙히 조아리며 걸으라네요.

맞아요.

인생길 가는데도 겸손이 필요해요.

오늘 칡넝쿨이 내게 조금 더  겸손할것을 주문합니다.

허리를 더 숙이고 칡넝쿨 아래를 지날때 진한 향기로 내게 칭찬한마디 던져줍니다.

"좋아!  그렇게 하는거야"

햇빛도 잘 들지않는 숲 깊숙한곳에 열매 두알이 가을색을 냅니다.

두알이니 망정이지 한알만 매달려있었으면 참 외로울뻔 했어요.

지나가던 산새들이 미처 못 본 모양입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진 도토리가 여기있네요.

작년에도 도토리가 풍년이었는데 올해도 많으려나 봐요.

도토리가 풍년이면 농사가 흉년이라던데 작년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듯합니다.

드디어 가을 실감입니다.

제법 단단한 알밤이 떨어져있습니다.

산길 중간중간에 밤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림하지않는 산밤은 알이 작고 벌레가 많아서 상품성은 없지요.

그래도 얼른 주워서 껍질째로 절반을 입에 놓고 꽉 깨물어줍니다.

"아드득"

제법 여물었어요.

잘근잘근 물어서 겉껍질은 뱉어내고 속껍질째 밤알을 씹으면 텁터름한 탄닌의 느낌과

고소한 밤알의 느낌이 조화롭습니다.

 

산책길 능선아래는 할머니네 밤나무 밭입니다.

여기 밤은 알이 굵고 맛도 좋긴한데 주인이 있으니 함부러 들러가면 안됩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올해는 한번도 보이시질 않네요.

봄부터 가을까지는 밤나무밭 초입의 오두막에서 밭도 일구시고 가을엔 밤도 수확하시는데

올 봄부터는 오시질 않습니다.

인적이 없으니 슬그머니 밤나무 밭으로 들어가봤습니다.

설마 벌써 밤이 떨어졌을까 싶었는데 웬걸요.

이 만큼이나 줏었는걸요.

양쪽 바지주머니 한 가득 쑤셔넣고도 자꾸 삐져나와서 얼른 벙거지를 벗어서 담았습니다.

이젠 정말 가을 실감납니다.

혹시 할머니 오시기전에 얼른 도망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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