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밤에는 화가 났습니다.
잠도 오지 않을것 같았습니다.
뒤척이다 잠이 들었습니다.
어제는 아침부터 기분이 가라앉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요 며칠 바쁘게 뛰어다닌덕에 겨우 급한불은 껐으니 조금 한가하기도 했지만
통 마음을 정리할수가 없었습니다.
내 아내가 나더러 당신도 철환이 엄마랑 다를게 없답니다.
지난번에는 철환이 아빠랑 똑같다더니 이번엔 철환이 엄마랑 똑 같답니다.
하루종일 마음속 화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씩씩댔더니 점심에 먹은 매운 고추 때문인지
배가 화끈거리고 조여들고 아픕니다.
일찍 회사를 나섰습니다.
집으로 가긴 가야할텐데 집에 가기가 싫습니다.
새로 생긴 국도변의 한적한 공원으로 갔습니다.
차에 실어둔 큰 생수병에 물을 한통 받고 작은 생수통엔 내가 마실물을 받습니다.
차에 누워 생각합니다.
내가 어찌해야할지를.
물을 한병 마셨습니다.
이젠 집으로 가야할텐데 가고 싶은 마음이 나지않습니다.
물을 한병 더 받았습니다.
또 한병을 다 마셨습니다.
후끈거리던 속이 조금은 식는듯도 합니다.
술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내가 혼자 술집에 앉아 술을 마신다면 아내는 슬플겁니다.
내 아내도 엄마와 남편사이에서 힘들잖아요.
힘들어도 힘든 내색도 못하잖아요.
형제가 많아도 그녀의 푸념을 들어줄 형제는 없잖아요.
내가 화난다고 내 아내를 힘들게하는건 안되지요.
누군가를 불러내서 그 사람 핑계를 대고 한잔 해야할텐데,,,
그런데 부를 사람이 없네요.
동진아빠는 벌써 취했을테고 안취했다고 해도 내 얘기보단 지 얘기가 급할테지요.
지은아빠는 바람 사건이후로 냉랭해진 부부사이만큼이나 우리와도 잘 안마주칩니다.
직원들 고생했으니 한잔하자고 몇사람 부를까요.
이 기분으로 그들을 고생했다 위로하면서 한잔한다구요?
그건 아니지 싶습니다.
달랑 하나 있는 초등학교 동창친구나 불러볼까요?
그 친구도 본지 오래됐네요.
동창회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안 나갔더니 자연 그친구 볼일도 없어지고
간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푸념하기는 싫네요.
그냥 전화기만 주물럭대봅니다.
어쩌나요.
전화할곳은 더 없네요.
이런 빌어먹을,,,
시간 참 더디게 갑니다.
겨우겨우 시간을 떼우고 집에 갑니다.
어색함을 덮으려고 일부러 큰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다녀왔습니다.
가게 생수통엔 물이 아직도 꽤나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그 물통 들어내고 새 물통을 얹습니다.
남은 물통의 물은 햇볕에 달아오른 가게앞 화분에 쏟아붓습니다.
내 안의 더러운 기분은 어디다 쏟아 버려야하나요.
집으로 올라갑니다.
장모님이 싱크대에 기댄채로 밥공기를 씻고 있습니다.
그냥 담가두시지 그러셨냐고 말해봅니다.
소용도 없는 말이긴하지요.
참 불쌍한 분입니다.
자식 일곱을 낳아서 키웠는데 이게 무슨 경우랍니까.
참 측은합니다.
그래서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제부모 돌보지도 않는 인간들이 내게 욕을 합니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까지 끄집어내서 욕을 하네요.
너는 니 아부지 모셨니?
아니,,,
나도 못 모셨지.
난 더 못했지.
울 아버지 풍이와서 한쪽몸이 말을 안듣게 되었을때도 혼자 병원 찾아다니시게 했지.
그래서 장모님 모시고 병원갈때마다 난 내 맘속으로 아버지한테 미안했어.
그런데 그 상처를 끄집어내다니.
그래도 그 인간들이랑 잘 지내래요.
날더러.
장모님이.
내 아내가.
그래서 장모님이 슬그머니 미워집니다.
미워지는 마음 감추려니 자연 냉랭해집니다
그랬더니 진심은 어디갔냐고 아내가 묻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습니다.
참 환장할노릇입니다.
어젯밤엔 정말 잠이 오질 않습니다.
표시안내려고 호흡조절 해가며 누워있는데 갑갑해서 죽을맛입니다.
술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냉장고에 시원한 소주가 두병은 있을텐데요.
삼층 계단을 내려가서 길건너 마트에도 술은 진열장에 차곡차곡 쌓여있을테지요.
내가 좋아하는 아주 독한 위스키도 얼마든지 있을테지요.
그렇지만 현관문 여는 소리에 아내는 깰 겁니다.
내 발자국 소리에 아내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가슴만 멍들테지요.
그냥 조심조심 벽에 기대앉습니다.
누워서 호흡조절하는것보다는 앉는게 더 편하다는걸 알았습니다.
아내의 발밑에서 누워자던 강아지가 누운채로 눈만 데구르르 굴려 나를 봅니다.
그러더니 스르르 다시 눈을 감습니다.
아랫층 사람들 이제 집에 들어오나 봅니다.
그 사람들 들어오는거보니 새벽두시쯤이려니 싶습니다.
맥주집을 한다는 아랫집 여자는 남자가 둘 입니다.
계약할때 함깨 왔던 남자와 가끔 오는 남자.
오늘 함께 들어오는 남자는 계약할때 왔던 남자일겁니다.
잠을 좀 자둬야 내일 저녁에 운전을 할텐데요.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봅니다.
비워야지요.
비워야지요.
주문을 걸어봅니다.
다 비워야지요.
비우지못한 마음속엔 불이 가라앉지않는데 조용한 밤에 비어버린 뱃속만
달그락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