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고

선생님이 불러요

치악동인 2009. 5. 23. 10:56

겨울 매서운 바람이 아직은 코끝에 시린 어느날,

선생님이 불렀습니다.

"1학년 모여~"

"네~~"

우르르 피어난건 노란 꽃망울을  가진 산수유와 생강나무였습니다.

그날저녁 치악산 꼭대기엔 하얗게 눈이 덮였지만 노란 꽃망울은 잘도 버텨냈지요.

며칠이 지나 선생님은 또 불렀습니다.

"2학년 모여~"

"네~~~"

이번엔 벚꽃들이 더 큰 목소리로 피어납니다.

길가에 늘어선 꽃들은 한꺼번에 줄맞춰 일제히 모였지만 시골마을이나

산중에 사는 산벚나무들은 지각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고 혼나진 않습니다.

선생님은 시간을 넉넉히 쓸줄아는 아주 여유로운 분이시거든요.

지각생들까지 다 챙기다보니 3학년 부르는게 너무 늦는건 아닐까요?

선생님이 다시 부르십니다.

"3학년 모여~~"

"네~"

이번엔 키작은 들꽃들이 대답을 합니다.

일찌감치 선생님의 부르심에 준비하고 있던 양지꽃이 제일 먼저 대답하고요,

제비꽃이 올망졸망 모여듭니다.

각시붓꽃도 쭈뼛쭈뼛 모였지요.

선생님이 모여든 꽃들을 둘러보다가 묻습니다.

"할미꽃은 어디갔나요?"

저런,,,꼬부라진 할미꽃은 봉분뒤에 허리를 꺽은채 피어서 잘 뵈질않습니다.

이제 4학년을 불러모을 차례입니다만 그사이 햇볕이 너무 뜨거워져서

나무 그늘아래로 자리를 옮겨야겠습니다.

그 사이 나무들도 충분히 그늘을 만들만큼 훌쩍 자랐으니까요.

"4학년 모여~~"

"네~~"

모습이 보이기도전 향기부터 풀썩 다가드는건 주렁주렁 아카시아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그늘 아래로 소박하고 순박한  찔레꽃이 가냘픈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하지만 찔레꽃이 순박해보인다고 함부러 대하면 아마도 따끔한 맛을 보게될겁니다.

 

이럴때쯤이면 꼭 제반 잘못찾아드는 학생들이 있기마련입니다.

자기가 4학년인지 5학년인지 헷갈리는 장미꽃이 선생님의 부름에 대답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성급한 장미꽃들이 살금살금 선생님앞으로 모여드네요.

아냐.

너희들은 5학년이야.

금방 부를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선생님은 조급한 장미들을 달래봅니다.

급할거 없잖아요.

선생님은 봄부터 가을까지 줄곧 꽃들을 부를텐데요 뭐.

사실 반을 잘못찾아도 별 상관은 없어요.

조금 늦게 오거나 조금 일찍 온다고 세상이 어찌 되는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냥 여러분~하고 불렀을때 우르르 대답해주는 꽃들이 반가울 따름입니다.

그런데요.

선생님이 딱 하나 못부르는 이름이 있대요.

부름에 대답할수없는 꽃을 자꾸 소리내어 부르는건 고통이거든요.

그래서 그 꽃은 가만가만 맘속으로만 부릅니다.

맘속으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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