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오래된 마을

치악동인 2008. 10. 7. 17:14

오후 농땡이 시간.

장거리 출장은 이런맛에 다니는거다.

힘들게 운전하고 가서 두세시간 미팅하고 남는 시간의 자유.

이번엔 경주인근의 양동마을이다.

사실은 양동마을보다 독락당이 더 보고싶긴하지만 가는길에 양동마을이 먼저있고

원래 좋은건 아끼는거거든.

 

우선 흘러내린 산자락을 따라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마을 규모가 생각보다

무지 커서 좋다.

게다가 입장료도 없다.

꽁짜라서 아주좋다.ㅎㅎ

사실 지나는길에 잠시 들려보자고 차 세울때마다 몇천원씩 받아가는

주차비며 입장료가 아까웠던적 많다. 

 어차피 고택에 대한 사전지식은 없으니 그냥 산책삼아 걸어보자.

그래서 제일 가까이 위치한 오른쪽 "심수정"쪽으로 걸어갔다.

심수정?

꼭 사람 이름같은 생각이 슬며시 든다.

임수정도 아니고 심수정?

회재 이언적이 벼슬길로 나갈때 그 동생은 형의 빈자리를 대신해 모친공양을 했단다.

그 효성을 기리기위해 지은 집이라했다.

오래된 나무그늘아래 툇마루에 앉으면 건너편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올듯싶다.

사람이 남의 집안으로 불쑥 들어갈순없으니 그냥 그럴거라고만 생각하고 말자.

 심수정을 지나고 초가지붕을 둘러싼 담벼락을 끼고 오르면 강학당이 나온다.

설명안들어도 강학당이란 이름으로 서당이었음을 알겠다.

그래도 확인사살.

서당맞네.

여름엔 마루에서 겨울엔 마루양쪽에 있는 온돌방에서 꽁지머리 도령들이 글공부를 했겠지.

공자왈~맹자왈~

글공부 생각을 하니 문득 울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울 할아버지는 무면허 한의사셨다.

불꺼지 캄캄한 방안에서 할아버지는 의서를 읊조리셨다.

웅얼웅얼~멧돼지 열~웅얼웅얼~

왜 하필 멧돼지열이 기억이 날까,,,

그렇구나.

내가 왜 흰갈대를 그리 좋아하나 했더니 울할아버지의 하얀 수염이 그리워서 그렇구나.

그랬구나.

 강학당 앞마당에서 보니 맞은 맞은편의 수졸당이며 향단이며 무첨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성한 나무들틈에 옹기종기 초가지붕이 참 정겹다.

초가지붕위로 호령하듯 위엄있는 기와지붕의 모습은 민초들의 생명줄을 거머쥔 양반의 위세인듯보인다.

세상에 평등은 없다.

 너무 넓은 마을을 다 둘러보기는 힘들듯하다.

가을해는 이미 짧아저버렸으니까.

서둘러 발길을 옮겨 맞은편 수졸당으로 향해가던중 소식이 그리운 감나무를 만났다.

감나무만 두고 주인이 새벽에 도망기차를 탄 사연이 있는줄은 모르겠지만

담장밖 소식이 그리운건 이해할수있다.

그립기도 하겠지.

툇돌위에 하얀 고무신 한켤레.

또 울할아버지 생각이 울컥.

가신지가 언젠데 새삼 그립단 말인가.

그리운건 세월에 따라 빛바래지듯 흐려지겠지만 문득문득 떠오를땐 더 사무치다.

된 비알을 걸어올라 수졸당 뒷동산에 올랐다.

나무에 걸쳐놓은 그네하나.

저곳에 엉덩이 결쳐놓고 흔들흔들 타고 오르면 그것도  재미있겠다.

뒷동산에 굵은 나무들이 아이들 총싸움놀이터로는 정말 제격이다.

꽁지머리 도령들은 무얼하고 놀았을지 상상이 안되니 그저 나 어렸을적 놀이나 상상해볼밖에.

 

 이런~!

수졸당을 내려와서 이제 본격적으로 멋드러진 향단이며 무첨당을 보려는데

관광버스한대가 우르르 할머니 할아버지 단체관광객을 풀어놓는다.

이런이런이런,,,

이미 왁자지껄한 경상도 사투리에 고음의 목소리로 동네가 시끄럽다.

난 좀더 가을색이 짙어진이후에 다시 오리라 맘 먹고 먼 발치에서 해넘어가는 무첨당에서 눈을 돌렸다.

이런 분위기에 산책은 이미 글렀다.

다음엔 왼쪽부터 돌아봐야겠어.

철수.(영희친구 철수말고)

'발길을 멈추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일전에서  (0) 2008.10.29
홀로 즐거우시다  (0) 2008.10.08
한지인형  (0) 2008.09.29
성당에도 한번쯤  (0) 2008.09.18
안압지 주변  (0) 2008.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