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농땡이

치악동인 2008. 5. 27. 13:28

부산출장마치고 돌아가는길.

밀양을 지나다 농땡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밀양IC로 나가버렸습니다.

지난번엔 만어사를 가봤으니 이번엔 표충사나 가볼까싶었지요.

어느 여자가 치유할수없는 사랑의 상처를 입었다는 밀양연극촌도 가보고 싶었지만

거기야 제때 시간맞춰가지않는다면 아무것도 볼수없을테니.

수백년 제자리 지키고 있는 산사가 아무래도 농땡이 대상으론 나을듯했습니다

표충사 인근에서 주차를 하고 뒷자리에 모셔져있는 자전거로 가볼까 생각하고

쫄쫄이 바지까지 갈아있었다가 도로 갈아입었습니다.

스님들 수행하시는 산사에 쫄쫄이 바지를 입고 가다니요.

그래도 일년에 한번일망정 부처님 오신날 연등까지 다는 내가

부처님 계시는 곳엘 그 민망한 쫄쫄이를 입고 가서야 되겠습니까?

 

 

산문이 제법 웅장합니다.

아쉽게도 일주문은 차로 휙 지나쳐버렸습니다.

산문앞 너른 공터엔 꽤나 굵은 나무들이 즐비해서 그늘이 시원했습니다.

 

 

종루를 보면서 갑자기 "위풍당당"이란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부석사 범종루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표충사 범종루는 부석사 범종루보다 위풍당당하지 않았습니다.

 

 

 

명부전과 관음전입니다.

사실은 절 뒤로 보이는 대숲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대숲이 통째로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담양 죽녹원에서 봤던 문구가 퍼뜩 떠오릅니다.

"대숲에 부는 푸른바람"

연녹색의 대숲으로 바람이 통과하면 정말 푸른바람이 될듯합니다.

 

 

 

나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담장이 둘러쳐진 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절이란 열려있어야하고

인위적인 담장이 아니라 자연의 담장을 가져야한다고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쩔수없이 담장을 쳐야하는 사연도 있겠지요.

그래도 난 "출입금지"라는 단어는 너무 싫습니다.

억지로 막아세우고 돌려세우는 "출입금지"는 너무 싫습니다.

 

 

외인출입금지.

정말 슬픈 문구입니다.

더이상 오지 말랍니다.

와선 안된답니다.

발길을 돌리랍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냉수한모금 마시고 속차려서 돌아서야지요.

어느 왕자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나병을 고쳤답니다.

절에 놀러오신 수녀님들이 많으셔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한모금 마셨습니다.

 

 

수녀님들이 단체로 오셨더군요.

절마당에 수녀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앉아계시기도 하고

명부전이며 관음전을 돌아보기도 하셨지요.

어느 수녀님이 관음전안에 모셔진 천수천안 관음을 보시곤 한마디 하십니다.

"웬 손이 저렇게 많아?"

옆에 계시던 수녀님이 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신가봅니다.

"저 많은 손으로 중생들을 보살피신다는거지."

"그럼 우리 하나님은 손이 하나래서 어쩌나요?"

수녀님도 참,,,

 

난생처음 석류꽃을 봤습니다.

'붉은 속살,,"어쩌구 하던 석류가 이  석류나무에 달리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꽃은 붉었습니다.

하지만 웬지 꽃모양이 정갈하지는 못했습니다.

 

 

 

까치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더니 사진상태가 영,,,

절구경을 마치고 나가려던길에 희한한 토끼녀석을 별견했습니다.

문화재보호를 위해 절 마당에 세워둔 소방차 그늘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오수를 즐기는 토끼녀석입니다.

난 이 토끼를 얼른 낮잠에서 깨워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거북이랑 경주하는중일지도 모르잖습니까?

낮잠을 깨웠더니 훽 엉덩이를 돌려대고는 뒷다리로 목덜미 긁적거리는꼴이

꼭 강아지같습니다.

이 토끼녀석은 아무래도 정체성을 상실한 토끼인가 봅니다.

할수없지요.

그냥 낮잠이나 자도록 놔두는 수밖에요.

그래서 이번에도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길거같습니다.

 

 

이제 농땡이도 부릴만큼 부렸으니 집에 가야지요.

얼른가서 저녁먹어야지요.

열심히 일했더니 배고파죽겠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집에 들어가야지요.

표충사를 핑계로 오후한나절 농땡이 잘 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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