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결핵보다 더 무서운 병

치악동인 2016. 3. 23. 11:37

결핵보다 더 무서운 병

 

송경동

 

종로2가 공구상가 골목 안

여인숙 건물 지하 목욕탕을 개조해 쓰던

일용잡부 소개소에서 날일 다니며

한 달 십만 원짜리 달방을 얻어 썼지

같은 방 친구의 부업은 타짜

한 번에 오만원 이상은 따지 말 것

한 달에 보름은 일을 다녀야 의심받지 않음

한 곳에 석 달 넘게 머물지 말 것

원칙 있던 그가 가끔 사주는

오천 원짜리 반계탕이 참 맛있었지

밤새워 때 전 이불 속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내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꼭 성공하라고

떠나는 날에야

자신이 결핵 환자라 고백했지

그가 떠난 날 처음으로

축축하고 무거운 이불을

햇볕 쬐는 여인숙 옥상 빨랫줄에 널었지

내게는

결핵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이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했으니, 쌤쌤

괜찮다고 괜찮다고

어디에 가든 들키지 말고

잘 지내라고 빌어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