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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4월

치악동인 2014. 5. 1. 07:34

배를  매며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무슨 신호도 없이
서로 아는 것도 아닌데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배를 매보는 일은 이세상에서의 참으로 드문 경험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와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앉아 있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하수 / 박이화 

 

 


한때 내 춤 스승님은
음악은 머리로 듣지 말라셨지
머리로 생각하며 추는 춤은
팔 다리가 느리고 무거워 음악에 끌려다니게 된다고

온몸 구석구석 음악이 배암처럼 스며올 때
비로소 능글능글 춤을 갖고 놀게 된다고

지난 내 검도 사부님은
시선을 칼끝에 집중시키지 말라셨지
두 눈이 매이면 생각이 매이고
생각이 어딘가에 붙들리면
검의 길을 알 수 없다고
그 때 일촉즉발, 상대의 칼날이 바람처럼 내 몸을 지나간다고

누구라도
꽃에 눈길 빼앗기는 순간 잎은 볼 수 없고
송두리째 향기에 마음 바친 동안은
커다란 꽃나무는 보지 못하는 법

그런고로
천하제일 춤꾼은 몸과 음악이 하나 된 사람
천하무적 검객은 몸과 검이 하나 된 사람

우리 사랑이 아직 하수인 것은
이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끝끝내 그 둘이 하나인 줄 모른 채
사랑 따로 이별 따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궁극에선
춤은 오래 전 연인의 가슴속에서
검은 칼집 속에서 가장 고요히 아름답다는 걸
우리가 거기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지

  

 

 

 

                 4윌 참 힘들게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