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변산반도 돌아서

치악동인 2013. 1. 9. 15:59

울산에 가서 일출을 봤으니 기왕이면 서해의 일몰도 보고 싶었다.

계산대로라면 광주일은 결과만 확인하고 몇마디 의견붙여서 회의록이나 작성하면 끝이려니,,,

오후 네시 이전에만 끝나면 순천 갈대밭을 가던지 영광 법성포를 가던지 북쪽으로 올라오다가 옆으로 빠지는 변산으로 가면 될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으로 출장길을 나섰다.

카메라 챙겨드는 내 꼴을 쳐다보는 아내의 눈초리가 달가와뵈지는 않았지만 뭐,,,

일은 예상대로 쉽게 마무리 되어가는듯 했다.

근데 만나야할 사람이 좀 늦는단다,,,이런,,,젠장헐,,,

한참 기다려 오긴 했는데 우리꺼 말로 다른껀이 있어서 회의가 쉽게 마무리 되질 않는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결국 해가 꼴딱 넘어가고나서야 일이 끝났다.

왕 실망이다.

 

일출도 제대로 된 일출을 아직 못 봤지만 일몰은 더 그렇다.

가끔 아산쪽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때 뒷유리창이나 사이드 미러로 붉은 해가 넘어가는걸 본게 전부다.

궁평항에서도 콧물만 흘리다 돌아왔고 영광 백수해안도로에서도 꽝이었다.

억울해서 그냥은 못 가겠다 싶어 정읍에서 하루를 묵었다.

새벽에 변산반도를 들어가서 변변치 않을거라 생각되는 서해의 일출이라도 보겠다고.

그나마 줄포만의 돌출된 곳에서보면 어쩜  색다르며 소박한 일출을 맞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새벽 여섯시.목표를 곰소항으로 잡고 달리는데 뭔가 희끗한 것이 날린다.

혹시 눈?

예보엔 그런 얘기 없었는데,,,그럼 또 꽝???

 

곰소항에 도착했을땐 어둠도 가시지 않은데다 이미 굵은 함박눈이다.

어차피 일출은 글렀으니 해안을 따라 조금 더 달렸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왕포마을.

언덕아래 바다와 맞닿을듯 가까운곳에 검은 갯벌을 앞에두고 오밀조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깨어 있는것이라곤 우렁우렁 짖어대는 목청좋은 개 한마리.

 

돌출된 언덕위에 모텔이 하나 서 있다.

나중에 저녁나절에 이곳을 여행할일이 있다면 저곳에 하루밤 묵으며 일몰 구경하면 좋겠다.

왕포모텔. 

 눈 쌓여 미끄럽기 전에 왕포마을 언덕길을 올라 다시 해안가를 달리다 어느 언덕위에서 맞은 풍경.

날씨만 좋았더라면 더 멋진 풍경이었을것을.

혼자 눈 내리는 바다를 보는건 그리 멋지지 않다.

 

 

굽이 굽이 돌다보니 어느새 채석강이다.

걸어서 산책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오전중엔 회사로 복귀해야하니 멀찌감치서 보고 돌아선다.

 

 

변산반도를 거의 한 바퀴 돌았을때 새만금 방조제로 향하는 길이 나타났다.

회사로 향하라는 네비의 지시를 무시하고 방조제 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돌아가야 하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새로운 길을 그냥 지나칠수 없지.

 

 어쩌다 마주치는 차량 외에는 인적도 없고 차도 없고 중간중간 만들어져있는 휴게소조차 텅 비었다.

눈 내리는 방조제를 혼자 달린다.

바다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그리 즐겁지 않은 싯귀절이 자꾸 맴돈다.

차라리 댓잎이라면 떠돌기라도 하지,,,

슬프진 않은데 눈 내리는 바다가 먹먹하게 다가온다.

 

차라리 댓잎이라면 / 이성복

 

형은 바다에
눈 오는 거 본 적 있수?
그거 차마 못 봐요, 미쳐요

저리 넓은 바다에
빗방울 하나 앉을 데 없다니
차라리 댓잎이라면 떠돌기라도 하지

형, 백 년 뒤 미 친 척하고
한번 와볼까요,
백 년 전 형은 또 어디 있었수?

백 년 뒤 비가 오고 있었다, 젖은
그의 눈에 내리다 마는 나는 빗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