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 가을
오대산은 크게 월정사지구와 소금강 지구로 나뉜다.
월정사 지구는 그 아름답다 이름난 전나무 숲길이 있고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눈길도 좋다.
상원사에서 본격적인 등산길로 오를수 있지만 그쪽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소금강지구도 몇차례 가보긴 했는데 전부 초입의 상가지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계곡입구에서
발길을 돌리곤 했다.
이번엔 회사 야유회겸 소금강지구를 등산코스로 잡았다.
진고개 휴게소에서 시작해서 노인봉을 거쳐 소금강 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전체적으로 내리막이 많은 구간이니 걷기 싫어하는 직원들도 무난하려니,,,
노인봉까지의 길은 정말 완만하고 부드러운 흙길이었다.
변수라면 첫번째 계단이 나타났을때 낙오자가 발생했다는 사실.
걸어서 문제가 된게 아니라 그 전날부터 체기때문에 약을 먹었다는데 참고 걸었더니 구토와 어지럼증이 왔단다.
다행히 출발지점에서 많이 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픈 여직원을 혼자 되돌려 보낼수도 없고,
함께 있던 직원은 전체적인 야유회준비를 맡았던 직원이라 내가 되돌아갔다오기로 했다.
아무래도 삼십분은 족히 걸릴테지만 그만큼 뛰면 될터이니,,,
내 다리를 믿어보기로 했다.
아픈 직원을 후송하고 산길을 뛰었다.
물론 그냥 뒤 쳐져서 혼자 가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날 기다리는 직원들의 발을 묶어둘순 없잖은가.
내려 오다 스쳐지나간 두팀을 계단길에서 추월했다.
조금 경사진 오르막은 그 계단길이 전부였던가 보다.
완만한 길은 제법 빠르게 뛰다 걷기를 반복했을때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는 조금씩 분명해졌다.
드디어 노인봉 아래에서 직원들을 만났다.
선두 일부는 하산을 시작했고 일부는 노인봉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배낭에서 특별히 챙겨온 술을 한모금 하는걸로 한숨 돌리고는 또 제일 후미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사실 오대산의 단풍은 이미 늦어서 산 정상쪽은 색이 남아있지 않았고,
계곡으로 점차 내려설수록 붉은 단풍보다는 노란 단풍들이 더 많이 남아서 가을 햇살에 빛난다.
붉은 단풍만이 단풍은 아니지.
특이 하게도 핸드폰 사진이 역광에서 빛갈라짐이 잘 나타난다.
DSLR에선 이런 역광을 만났을때 대부분 색이 날아가버리기 일쑤인데,,,
사진으론 남기기 힘들었지만 역광으로 빛나는 풍경들은 환하고 아름다웠다.
계곡의 수량이 점점 많아지며 계곡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을때 귀면암이라 불리는 웅장한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붉은 적송인 금강송이 곧게 뻗어 올라간 모습도 좋았고 바위틈을 벌리고 마디게 자라는 분재소나무도 보기 좋았다.
걷는걸 걱정했던 몇몇 직원때문에 선두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진듯 했다.
어쩌랴,,,이참에 풍경이나 느긋하게 봐야지.
누군가의 카메라에 내가 잡혔다.
귀찮기도 했고 잊어버리기도 해서 카메라를 챙기지 않아 걱정했더니 카메라를 들고 온 직원들이 꽤 여럿이었다.
제일 후미에서 낙오자들 챙기는것도 젊은 직원들에게 맡기면 될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가다보면 늘 그건 내 몫이더라.
또 한사람의 배낭을 받아 두개를 걸쳐매고 휘적휘적 걷는다.(배낭이 무겁진 않다)
가을 풍경에 취했다고 발길마저 휘청대진 않는다.
땀이 흘러 눈이 매울까봐 버프를 이마에 둘렀더니 골깊은 주름이 감쪽같이 카바됐다.
얼굴 잡티는 노이즈제거 프로그램을 한번 밀었더니 훨씬 깨끗해졌다.
마술이다.
앞서간 팀들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상가지구에 도착해서 발길을 재촉해야했으나 겨우겨우 도착한 사람들을 위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젠 다 왔다는 심리적 여유까지 더해서 옥수수동동주 세사발을 연커푸 들이켰다.
빙그르르 술이 오른다.
난 왜 막걸리에 이리 약한건지,,,
급할수록 쉬어가라니까 암만 급해도 막걸리는 먹고 가야겠다.
이리하여 올 가을 야유회까지 무사히 마쳤다.
가을 소금강 풍경.
조금 늦긴 했지만 뭐 괜찮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