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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가을

치악동인 2012. 10. 25. 16:45

봄이 오기도 전에 선암사를 들렸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어 두 절 사이를 넘나드는 길이 좋다는데,

차마 그길을 걸을 엄두는 못 내겠다.

선암사만 들린후에 송광사가 내심 궁금했는데 광주 출장간김에 잠시 들러간다.

우리 동네는 가을이 무르익었다만 아직 남도의 가을은 살짝 설 익었다. 

 흔히 그렇듯 유명짜한 절 입구에는 식당이며 상가들이 즐비한데 이곳 송광사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러고보니 선암사는 그런데 없었구나,,,

절 규모면에서도 선암사는 작고 아담했으니.

 상가지구에서 일주문을 향해 올라가는길이다.

평일이라 적당히 한산해서 천천히 걷기에 좋았고 풀냄내가 향긋했다.

여름날 길가의 풀을 베어 놓으면 처음엔 풀비린내가 나다가 햇볕에 마르면서 점차 향긋한 풀향이 나기 시작한다.

지금의 풀냄새가 딱 그렇다.

 일주문까지의 길은 호젓하지도 그닥 멀지도 않았다.

멀지않은 길이었지만 산사로 들어갈수록 가을도 조금씩 더 깊어져갔다.

사자루 앞에 있는 저 작은 누각의 이름이 뭐였더라,,,전각이라고 불러야 하나 누각이라고 불러야 하나,,,요사채라 불러야할까?

 

 사자루 옆으론 작은 개울이 사자루를 지나 우화루 아래로 흘러 간다.

개울가에 심어놓은 느티나무에도 가을이 내려앉고 있다.

스님들 공부하시다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가을풍경에 홀리시겠다.

참선이고 뭐고 일단 가을구경부터 하셔야겠으니.

개울건너편이 사자루.

개울 아랫쪽이 우화루. 

대웅전에 들어가 조용히 삼배를 올렸다.

내 아무리 부처님 오신날만 절에 가는 땡땡이 불자라해도 마음에 부처님을 모셨는데 그냥 지날수야 없지.

오늘도 우리 가족과 친구의 가족을 위해 무릎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렸다. 

대웅전 뒤쪽의 풍경이 그윽해서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스님들 수행처라 출입금지다.

공부하시는 스님들께 누가 될순 없어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보니 송광사라는 이름만 거창했지 그닥 볼게 없다는 아쉬움이 살짝 든다.

법정스님이 공부하셨다는 불일암은 오후네시 이후엔 참배를 사양한다는 팻말을 본터라 거길 가선 안될터이고.

불일암이라,,,

그냥 돌아서기엔 너무 아쉬워서 실례를 무릎쓰고 불일암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하나 겨우 지날만한 오솔길로 한참을 걸어도 나타나질 않는다.

점점 어둠은 내리는데 이걸 우짜꼬,,,

그러다 문득 눈앞에 대숲에 둘러싸인 불일암 입구가 나타난다.

하늘도 이미 초승달이 뜨기 시작한데다 대숲에 둘러싸인 불일암은 어둡고 고요했다.

작은 촛불하나 켜 놓은듯한 법당의 불빛은 희미하기만 하다.

난 혹여 스님 공부 방해될까봐 발걸음도 죽이고 숨소리 마저 안으로 삼켰다.

법정스님은 가신지 오래지만 또 다른 법정스님이 공부중이실테니까.

아니다.

사실은 대숲의 분위기며 희미한 불빛의 암자가 저절로 날 움츠러들고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출입금지의 시간 아니던가,,,

 

돌아나오는길은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야할만큼 어둠이 빨리 찾아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난감할뻔 했다.

법정스님은 왜 본사와 뚝 떨어진 암자를 거처로 삼으셨을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시고 싶으셨을까?

하긴 돌아가시기전 기거하셨다던 오대산의 암자는 지금도 공개되지 않은걸로 안다.

 

스님은 깨우침을 얻었을까.

깨우쳤다고 하신들 내가 깨우쳤소 라고 말씀하진 않으셨을게다.

우매한 중생들이 수없이 물었을꺼 아닌가.

"뭘 깨우치신거요?"

그리곤 지들끼리 찧고 까불꺼다.

그런데 깨달음이란게 이거다 하고 한마디로 말해줄수 있는일 같으면 왜 두메산골 첩첩산중을 찾아들고

무릎에 사리가 생기도록 참선을 거듭하겠는가.

 

그러니 스님은 스님대로 공부 열심히 하셔서 깨우침을 얻으시고 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아 지나온 삶을 후회하지 않을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