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보리

치악동인 2011. 2. 21. 18:48

보리.

왜 이름을 "보리"라고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날 출장가는길에 딸아이 사는곳에 들려서 집에서 챙겨간 물건

몇가지를 두고 가려고 회사에 있는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딸 아이 하는말.

"아빠~혹시 아빠 놀랄까봐 얘기하는데 집에 고양이 있어."

딸아이는 예전부터 고양이를 그리 좋아했다.

새끼 길고양이를 데리고 온 적도 있었으나 엄마에게 욕만 잔뜩 먹고는

우유만 먹인채 돌려보냈다.

이제 제 살림을 차렸고 제 힘으로 돈 번다고 제 멋대로

고양이를 키우겠단다.

나도 짐승을 좋아하긴 하지만 집에서 키우는건 심사숙고 해야한다.

우선 집주인과의 계약조건에 짐승은 안 키우겠다는 조항이 있었고,

생각보다 반려동물은 손이 많아 간다.

먹이주는정도야 아주 쉬운일이지만 배설물을 제때 치우고 청소하는일,

간간히 산책시키는 일하며 계절따라 털갈이할때는 온 집안에 털이 날린다.

당장 엄마가 알면 불벼락이 떨어질게다. 

문 열리는 소리에 어디로 숨었는지 안 보이던 고양이가 제 이름을 부르자 침대밑에서 아장아장

걸어나온다.

털이 복실복실할뿐이지 안아 들어보니 뼈가 앙상하다.

이제 겨우 세달쯤 되었다는데 꽤 활발하고 붙임성있다.

일단 엄마에게는 암말 안했다.

이미 사다놓은걸 어쩌겠나.

또 제가 그리 키우고 싶다는걸 어쩌겠나.

몇년후에 시집가버리면 그땐 우리가 키울망정 지금이야 그냥 둘수밖에 없겠다. 

졸업식때문에 아이가 집으로 왔다.

보리도 함께 왔다.

밤새도록 얀이와 보리는 숨바꼭질을 한다.

보리는 소리없이 움직이지만 얀이는 걸을때마다 마룻바닥을 긁는듯한 소리가 난다.

결국은 내가 보리를 안고 다른방으로 쫒겨났다.

 

딸아이가 정을 주는 녀석이라 그런지 보리가 이쁘다.

나중에 딸아이가 시집가서 아이라도 낳아오면 그땐 어쩌려고

이놈 고양이까지 이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