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가을 상원사에서

치악동인 2010. 10. 26. 12:02

길을 가다보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때도 있다.

혹은 지나가는 자전거나 차의 타이어에서 튕겨져 나온 돌에 맞을수도 있다.

이번엔 좀 쎈걸로 맞았다.

정신없이 며칠을 지나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 후로 계속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가을바람은 진즉부터 불어왔으나 여행을 가는것도

주절주절 혼자 떠드는것도 웬지 지겨웠다.

하지만 언제까지 바닥에 머물순없었다.

무언가를 탁 차고 올라서야만 했다.

그래서 가을이 내려앉은 상원사 계곡으로 향했다. 

차가운 계곡물에 낙엽이 흘러내린다.

두 남녀가 머물다 떠난 자리에 앉아 물 한모금을 마시는데 바위의 오목한 곳에 뽀얀 막걸리가 흘렀다.

훌쩍 콧속으로 밀려드는 막걸리 냄새.

하마터면 흘린 막걸리에 코라도 박을뻔했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던 막걸리가  갑자기 땡기는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난 참 많이 변해가고 있나보다. 

추석에 때 아닌 폭우가 중부지방을 덮쳤다.

난 햇빛이 짱짱한 제주에 있었기에 폭우가 실감나지 않았지만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뿌리채 뽑혀 넘어갔다.

나무의 뿌리가 뽑히면서 뿌리를 감싸고 있던 흙과  그 흙에서 자라던 폴도 함께 쓰러졌다.

나무는 일어서지 못했지만 어느새 풀은 누워있던 매무새를 고치고 하늘을 향해 곧추섰다.

이렇게 살 일이다.

풀처럼 유연하게 툭툭털고 일어날 일이다.

돌뿌리에 걸리더라도 혹은 돌멩이에 얻어맞더라도. 

가라앉은 감정의 바닥을 냅다 걷어차고 나니 산사로 오르는길이 아름다웠다.

누구에게라도 보여줘야 할만큼.

천천히 걸었다.

한 계단 한계단을 정확히 밟았다.

그래야만 할것 같았다.

건너뛰지말고 한계단씩.

 

그렇게 천천히 상원사에 올랐다.

일주문 옆으로는 벌써 겨울땔깜을 잔뜩 쌓아두었다.

산중의 겨울은 빨리오니까 그래야겠지.

까치가 선비를 구하기 위해 머리로 찧어 새벽을 울렸다는 범종각 아래로 사람의 인적이 보인다.

저긴 내가 혼자 앉아 밥먹는 자리로 찜해놨는데,,,

경내에선 음식을 먹지말아달라는 주지스님의 지엄한 부탁의 말씀이 있었던지라 범종각아래의

후미진 곳이 나 혼자 밥먹기도 좋거니와 혹여 스님께 걸리더라도 낭떠러지를 뒤에 두고 있으니

이곳말고는 갈곳이 없다는 배수진의 위치이기도 했는데 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하긴 온전히 내것인건 이세상에 없는법이지.

대웅전에서 얼른 삼배만 올리고 혼자 틀어박힐만한곳을 찾아 나섰다. 

 가을산은 혼자 사색할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오색의 단풍은 눈을 홀린다.

겨우 구석자리하나 차지하고 앉아 가방을 뒤적이는데 이런,,,

젠장헐! 비빔밥 전투식량인데 숟가락이 없다.

지난번 설악산에서도 그러더니 또 안 챙겼다.

그나마 설악산에선 과도라도 있어서 그걸로 비비고 떠 먹었는데 이번엔 과도도 없다.

그렇다고 저 이쁜 나뭇가지를 꺽을수도 없고,,,

그때 홀연히 나타난 일단의 무리들이 내 옆에 자리를 잡더니 마른나무가지를 주워드는 내게

나무젓가락을 건넨다.

포장지에 씌여진 익숙한 김밥나라의 전화번호.

아마도 우리동네 사람이거나 우리동네 김밥집에서 김밥을 샀거나.

어쩌면 그들중 누구하나가 날 알아보고는 내 아내한테 전해줄지도 모르지.

"아저씨 산에서 혼자 밥 드시대요?"

그럼 내 아내는 또 그럴꺼다.

"그 아저씨 원래 혼자  잘 그래요"

 

 

 

이젠 꽤나 깊은 가을이다.

돌뿌리에 넘어지더라도 얼른 일어나 길을 가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