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멈추고

찻잔속에서 꽃이 되다

치악동인 2010. 8. 20. 15:50

손가락 마디마디가 뻑뻑하고 아프다는 아내.

병은 동네방네 알려야 한다더니 어찌어찌해서 서울 어느곳에

그런 증상을 전문으로 하는 의원과 약국이 있다는걸 알았다.

동네의원에서 처방해준 약은 얼굴이 퉁퉁부어서 못 먹겠다 하고

언니가 소개해줘서 지어온 한약은 별반 효과가 없었는데,

서울에서 처방했다는 그 약을 얻어서 하루먹고나니 통증도 없고 붓지도 않는단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조금 찜찜한 구석도 있긴 하나

가게 쉬는날 맞춰 하루 휴가를 내고 서울로 갔다.

오랜만에 교통체증심한 올림픽도로로 올라서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난다.

명절때거나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때면 아버지 모시고 올라왔다가

아버지와  함께 이길을 따라 내려가곤 했다.

특히 추석날 저녁에 내려갈때는 휘영청 보름달을 머리에 이고 가곤했는데

평생 운전을 업으로 삼으신 아버지는 차선을 자주 바꾸는 내게 조용하게 타이르시곤 하셨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라"

그러시던 아버지는 아주 급하게,예고도 없이 떠나셨고 새로 난 외곽순환도로 때문에

더이상 이길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떠난 사람을 자꾸 기억하게 되는건 힘든 일이니까.

아랫지방으로 출장을 다닐때마다 지나야했던 국도변의 개울엔 아버지와의 고기잡던 추억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새로 고속도로가 뚫릴때까지 그길을 무심히 지나기가 무지 힘들었었다.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아버지 보고싶다,,,"

그러고 보면 아내가 엄마에게 집착하는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도와줘야할 일이다.

돌아가신후 후회가 덜 남아야하니까.

하루를 온전히 휴가냈는데 병원만 들리고 그냥 집으로 내려가긴 너무 아까웠다.

사실은 서울을 가기전부터 내려오는길은 이미 머릿속에 정해져있었다.

두물머리를 들려서 양평을 거쳐 집으로 가는것으로. 

워낙 시내구간 통과가 많다보니 거리는 가까운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도착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곳이다보니 강폭이 무지 넓다.

내가 원하는 강가의 풍경이란 물안개가 자욱히 피어오르거나 빗방울이 토닥토닥

잔물결을 일으켜주는 풍경인데 햇빛이 폭염수준이니 그런 몽환적인 풍경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다행히 아내는 강가를 따라 달리며 보는 풍경이 제법 좋다고 만족해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평일 오후인데다 무지 뜨거웠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주차비를 내고 돌아서는데  할머니께서 불러세워서 미술관 무료티켓을 쥐어주신다.

사실 미술관은 어차피 무료고 티켓을 주시는것은 홍보차원이다.

그림이 붙어있지 않은 바깥쭉 바람벽엔 무수히 많은 낙서가 붙었다.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과 소망을 적은 사람들.

누구누구와 다녀가다 라던가 아이들이 잘 커주길 바란다는 얘기.

다음에 다시 왔을때 자신이 남긴 흔적을 보면 반가울까?

반가울수도 있고 아플수도 있다.

흔적이란건 그렇다. 

 

작은 미술관을 둘러보던중 삼십여가지의 그림같은 차가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차를 주문했다.

유학가는 아들을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화가에게

인물화를 부탁하셨다.

찻잔을 앞에두고 앉으신 아주머니는 긴장을 풀어드리려는 여류화가의 이런 저런 질문에

스위스로 유학 떠난 아들 얘기를 풀어놓으신다.

좋은곳으로 공부하러 가는건줄 아는데도 왜 이리 맘이 짠한지 모르겠다시며.

부모는 집 떠나 있는 자식이 늘 애처럽고 맘에 걸린다.

그리 멀지않은곳의 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기숙사로 가고 나면 나도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했다.

밥은 먹었는지,돈은 안떨어졌는지.

그렇게 몇년을 지나고  졸업반인 딸애를 이번해에는 기숙사에 안보냈다.

상반기에 통학을 하고는 불편하다며 기숙사로 들어가겠다는 녀석에게 무조건 집에서 다니라고 명령했다.

아내와 딸은 그 일로 목하 신경전중이다.

집을 벗어나려는 아이와 집 떠난 아이가 불안한 부모는 쉽게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여류화가는 나이든 아주머니의 젊었을적 모습을  담아내려 애쓰는 중에

남자 주인은 와인잔에 마른 찻잎 뭉치를 넣고 돌아섰다.

차를 머그컵 같은 도기에 주지않는것도 이상한 일이고 물도 부어주지 않으니 당황스럽다.

촌티 내지 않으려고 잠시 기다렸더니 다행히 쥔장께서 뜨거운 물을 부어주며

설명을 하신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탁구공만하게 뭉쳐져있던 마른 찻잎이 스르르 풀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자라난다.

아내와 나는 동시에 똑같이 탄성을 내질렀다.

"어? 어~어~ 와~!"

찻잔속에서 찻잎은 꽃으로 피어난다.

녹차를 베이스로 해서 천일홍,백합,또 무엇무엇이라고 설명해주는데 젠장 까먹었다.

이십여분을 기다렸다가 마시라는데 이십오년을 산 부부는 이십여분이나 기다리며 나눌 얘기거리가 없다.

같이 산 기간이 길면 나눌 얘기도 많아야하는데 어찌 할말이 그리도 없는지.

그래도 그림 그리는 모습 지켜보다가 찻잔속에 피어난 그림같은 꽃을 보다가 사는 얘기 몇마디 섞다가

뜨거운 물을 두번이나 더 부어서 석잔을 마셨다.

 난생 처음으로 찻집에서 아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운전할때 옆자리에 나란히 앉는일 이외엔,

또는 다른 부부들과 합석하는 자리 이외엔 아내의 옆자리에 앉아 본적이 없었다.

어색하고 쑥쓰럽고 남들의 눈마저 신경쓰여서인데 한번 길을 텃으니 이젠 종종 해볼일이다.

찻집을 나오면서 아내가 속삭인다.

"저 사람들이 우릴 부부로 볼까?"

오래도록 차를 마시는 동안 밖은 어두워지고

어둠속에서 보는 불 밝은 미술관은 보기에 좋았다.

 

다만 차를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예민한 아내는 밤을 하얗게 새워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