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까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언 인근의 대로변에서
나무그늘 아래의 보도블럭위를 어슬렁 거리고 있는 이 녀석을 만났다.
그늘이 졌다고는 하지만 보도블럭은 적당히 달구어져 녀석이 발 맛사지를 즐기기에
딱 좋은 온도이긴 했지만 지나는 사람들의 발에 밟힐까 걱정스러운 나머지
녀석에게 말을 붙여봤다.
"이봐! 넌 누군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
,,,
대답이 없었다.
내 말을 무시하는 벌레에게 불끈 화가 치밀었지만 곧 내 실수임을 깨달았다.
벌레에게 사람의 언어로 질문하는건 예의가 아니다.
보도블럭위에 쪼그리고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페로몬을 흘려보냈다.
그제서야 녀석의 더듬이가 내 페로몬을 느끼고 내게 페로몬으로 답해왔다.
"난 니들이 알락하늘소라고 부르지.
그런데 말야 내 일에 참견말고 니 할일이나 하지?"
상당히 시 건방진 알락하늘소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녀석과 어렵게 말을 트게 된 마당에 한마디에 주눅들고 돌아선다는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너 위험해보여서 그래. 여기서 이렇게 얼쩡대다가 사람들한테 밟혀 죽는다고"
난 은근슬쩍 너의 편이란걸 강조하며 대화를 유도했다.
알락하늘소가 말했다.
"그러는 넌 강원도에서 이곳 부산까지 뭐 줏어먹을거 있다고 왔냐?"
어라?
이거 상당히 삐딱한 놈을 만났다.
"나야 업무때문에 새벽길을 달려 왔다만 넌 풀밭이나 숲속에 있어야 할 놈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녀석이 더듬이를 하늘로 뻗쳐올리며 대답했다.
"살다보면 가끔 내 사는곳이 지겨울때도 있는거야.
그래서 바람을 타고 좀 멀리 날아 와 봤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었어"
짜식.
진즉에 그렇게 고분고분할것이지.
말문이 열린 녀석이 또 물었다.
"이봐 인간. 내가 어디로 가야할까?"
난 그만 콱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질문은 내가 수시로 내게 하는 질문이며 수없이 고민해도 답을 알지못하는 질문이었다.
갈길을 몰라하는 녀석에게 내가 해줄말이 없다는건 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난 이럴때 써먹는 요긴한 방법을 생각했다.
바로 선문답이다.
녀석의 질문에 답은 않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넌 달마가 왜 동쪽으로 간지 아냐?"
녀석은 난데없는 내 질문에 적잖이 당황한듯 심하게 더듬이를 휘둘렀다.
내가 얼른 무릎을 펴고 일어서며 말했다.
"우선은 동쪽으로 가"
녀석은 다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동쪽이라는 단어에 희망이 생긴듯 더듬이로 동쪽의 냄새를
맡았고 곧 길을 떠났다.
녀석에게 제대로 길을 일러준건지는 나도 모르지.
나도 늘 내가 가는길이 올바른 길인지 모르는걸.
게다가.
난 쪼그려앉은 무릎아래가 저린데다 얼른 내 업무를 시작해야하고 또 돌아가야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