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내 손에 殺 있다.

치악동인 2010. 3. 6. 14:44

이쁜이는 우리와 삼년쯤을 살았다.

회사 마당을 배회하던 복동이는 우리집으로 안고 와 칠년쯤 살았고

순종 말티즈라던 개장사말에 속아서 산 잡종견 애니는 오년쯤 살았다.

애니는 짱구를 비롯한 일곱마리의 새끼를 한배 낳고

그 다음 세마리의 새끼를 한배 낳았지만 한겨울에,

그것도  집밖의 공터 목재틈바구니에 새끼를 낳고는 맥없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눈도 못 뜬 새끼들과 함께  묻어야했다.

애니의 새끼 짱구는 첫배를 지에미처럼 한겨울에  집뒤안 바윗돌밑에 굴을 파고 낳아놓고

젖도 제대로 안주고 쏘다니는통에 두마리의 새끼가 추위와 배고픔에 다 죽어가게 만들었다.

겨우 낳은지 보름지난 새끼들을 집안으로 데려와 우유병으로 인공포육을 시도해봤지만

둘 다 실패해서 우리집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 다음 여름에 짱구는 배가 불러서 축 처진 배를 끌고 다니다가

장마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중에 며칠을 보이지 않았다.

며칠만에 집에 온 짱구에게서는 출산후에 느껴지는 특유의 그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도무지 어디에다 새끼를 낳은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해 장마를 밀어낸 태풍이 온대성 저기압으로 생명을 다하고 젖은 땅위로 햇볕이 뜨겁던 날

난 집주변의 사철나무 울타리를 짱구를 따라 쫄랑거리며 드나드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집안 창에서 가만히 지켜보다보니 한마리,또 한마리.

"짱구 새끼 저기 있다!!"

부엌에서 아내가 뛰어나오고 딸아이가 제 방에서 뛰어나왔다.

난 마당으로 뛰어나갔고 짱구는 집앞 너른 콩밭으로 도망갔다.

놀란 강아지들도 제 어미를 따라 콩밭으로 뛰어들어갔으나 어린 강아지가 나보다 빠를순없었다.

강아지들은 무성한 콩잎포기사이로 숨어보려했지만 강아지는 결코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갖지 못해서 내게 모두 포획되었다.

두마리를 보고 뛰어나갔지만 한쪽구석에  한마리가 더 있어서 짱구의 새끼는 모두 세마리였다.

하얀털을 가진놈 하나와 얼룩이 두마리였다.

짱구가 얼룩이였으니 우리의 추측으론 우리집위로  백여미터 떨어진집에서 키우는 하얀 발바리가

아빠려니 짐작할뿐이었다.

하안털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딸아이에게 "하얀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후 얀이와 형제들은 

한동안 동물병원에서 피부병치료를 받느라 우리와 집안에서 살게됐고

한참 뒤  얼룩이 둘은 각각의 집으로 분양되어졌다.

그후 얀이는 칠년동안 우리와 함께 살며 아침엔 미용실로 출근하고 저녁엔 함께 퇴근했고 

시골집을 떠나 함께 시내로 이사했고 여태도 잘 살고 있다.

하얀 개털을 휘날리며. 

난 얀이의 엄마 짱구에게 빚을 졌다.

벽에 못 박는것도 함부러 박아선 안된다던 우리 고모말씀에 사람손에는 "殺"이 드는 날이 있어서

함부러 손을 휘두르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그날은 내 손에 그  "살"이 든 날이었던가보다.

짱구의 엄마 애니가 일곱마리의 새끼를 낳고 그놈들이 젖을 떼고 마당을 휘젖고 다닐때였다.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왔는데 마당에 쫄랑대는 강아지들이 귀여워 잡아보려했지만

사람손을 타보지 않은 강아지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갔다.

장난기에 한마리를 잡으려고 구석으로 몰았는데 도망갈곳이 없어진 한마리가 내 손에 붙들렸다.

제법 뾰족하게 이빨이 돋은 그 녀석은 저를 들어올리는 순간 내손을 물어버렸고,

난 놀라서 확 던져버렸다.

아뿔사,,,

텃밭에 내 팽겨쳐진 강아지는 충격에 정신을 잃었고 가을이 시작되는 바람은

쓰러진 강아지의 솜털을 휘날리게 했다.

어느샌가 어미개 애니가 강아지곁으로 달려와서 쓰러진 제 새끼를 지켜보기 시작했고,

난 어미와 새끼에게 미안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애니야!일부러 그런게 아냐.미안하다"

애니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행히 십여분후 새끼는 정신이 들었고

죽을뻔했던 그 강아지의 이름은 딸아이가 가장 이뻐하던 "짱구"였다.

그후 짱구는 사람을 잘 따르지않아서 다른 형제들이 다른집으로 다들 분양되어 갔지만

우리집에 그냥 남게 되었는데 주인인 우리식구에게조차 잘 다가오지않고 겨우 주는 밥만 먹으며

집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내 손에 살이 들었던적은 여러번이다.

내가  일곱살쯤 되었을까?

아랫동네 윗동네 아이들끼리 투석전이 벌어졌다.

그땐 정말 돌을 던졌는데 맞으라고 던지기보다는 그냥 위협적으로 던지는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내가 허공을 향해 던진돌이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는데 그게 느린그림처럼 보였다.

돌은 어느아이의 머릿통에 정확히 맞았고 뻑!하는 타격음까지 옆에서 들린듯이 크게 들렸다.

그날 난 할머니방에 숨었고 울엄마는 그 애 엄마에게 싹싹 빌며 치료비를 물어줘야했다.

 

짱구를 내던져 정신을 잃게 만든 그후에도 동네 개 한마리를 죽일뻔한적이 있었다.

집앞에 도사견 잡종인 큰 개 한마리를 묶어뒀는데 우습게도 그 개 이름은 "애기"였다.

애기가 처음으로 암내를 냈는데 아랫집의 발바리 한마리가 애기에게 대쉬를 했다.

크기로 치자면 애기의 배 아랫쪽에 등이 닿을까말까한 쪼그만한 녀석이 달려드는데 가관인건

애기가 엉덩이를 그 작은놈의 키에 맞춰서 내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후 적당한 신랑감에게 시집을 보내려던 계획이었는데 그꼴을 봤으니 난 화가 났다.

"저놈이 씨를 버려도 유분수지,,,어디다 대들어!"

나의 출현에 놀라 뜻을 이루지못하고 도망가는 그 발바리에게 공깃돌만한 돌맹이를 날렸다.

"뻑!"

정말 맞을줄은 몰랐는데 공깃돌은 정확히 놈의 머릿통을 맞췄고 그 놈은 픽 고꾸라져서 뒤집어진채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죽진않았고 잠시후 정신을 차려서 후다닥 도망을 치긴 했지만 그날도 분명 내손에

그 "살"이 들었던게 분명하다.

 

어쩜 제 새끼를 팽개친 주인때문에 애니는 두번째 새끼를 집밖의 공터에서 낳았을지도 모른다.

짱구도 사람이 무서웠으니 아무리 먹이로 유혹하고 좋은낯으로 불러도 밖으로만 빙빙 돌았을것이다.

첫번째 낳은 새끼를 잘 돌보지 않는다는,

순전히 사람의 관점에서 보고 판단하여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던것도 짱구에겐 충격이었을테고,

그런 연유로 장맛비가 퍼붓는 바깥어딘가에 숨어 새끼를 낳게 되었을것이다.

이 모든게 다 내손에 든 "살" 때문이다.

내 과오요 내 업보다.

 

요즘들어 "얀이"의 입냄새가 장난아니다.

퇴근하고 들어가면 그저 반갑다고 내게 콧김,입김을 푹푹 뿜어대는데

정말 이런 고약한 입냄새는 경험해본바 없다.

털빠지는거야 한두해 일도 아니니 지긋지긋하지만 그냥 참겠는데,,,

그래도 어쩌겠나.

다 내가 벌린일의 끝자락인걸 어쩌겠나.

 

누구나 손에 드는 "殺"을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