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기회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갓 입학할 정도의 아이의 앞에
젊은 아빠가 무릎을 꿇은채로 정성껏 바인딩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엄마는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스키를 신은채 정다운 부자의 모습을 지켜보지요.
요즘은 축제장을 가거나 음악회를 가거나 전시회를 가거나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접하게 해주려는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들이 넘쳐납니다.
우리 어릴땐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만 놀았지요.
먹고 사는일에만 매달려도 힘겨운 부모는 그저 밥 세끼 꼬박꼬박 먹이는데 급급했으니
내 아이가 어떤일에 소질을 갖고 있는지는 챙겨볼 여지가 없습니다.
그저 공부나 잘 해서 좋은 직장다니고 자신들만큼 힘겹게 살지 않기만을 바랐지요.
이젠 먹고 사는 문제는 어지간히 해결이 될만큼 소득이 늘고 여유가 생긴건 분명합니다.
그러기 위해 숨가쁘게 살아야하는건 예전보다 더 할지 모르지만.
아이가 먼저 내려가고 아빠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켭봅니다.
헬맷까지 쓴 아이의 모습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치키챠카 챠카쵸코 쵸 손오공을 닮았습니다.
중급 슬로프에 아이를 데리고 올라온거 봐서는 오늘이 처음은 아닌게 분명하고
아이도 망설임없이 슬로프를 내려가는걸 보니 몇차례 연습은 끝마친 솜씨입니다.
저 아이의 아빠는 분명 나보다 현명하고 사려깊은 아빠일겝니다.
적어도 아이를 처음부터 중급슬로프에 올려놓고 "니가 알아서 굴러 내려가라"고 하진 않으니까요.
아이도 빠르지는 않지만 안정되게 내려가는거보니 이제 그만 남의 아이에게서 눈 떼고 내 딸아이 챙겨봐야지요.
딸아이는 내 교육방법이 나름의 효과가 있었는지 이젠 제법 턴까지 해가며 잘 내려갑니다.
요즘 스키장은 올망졸망 이쁜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제대로 정면에서 아이들을 찍고 싶은데 기어이 딸아이가 한마디 참견을 합니다.
"아빠 초상권 침해야!"
딸아이는 커플룩을 입은 남녀들에게 눈이 갑니다.
"아빠. 재들은 꼭 저렇게 티를 내야돼? 확 꼭대기에서 밀어버리고 싶어"
그러고보니 난 아이들에게 눈이 가 있고 딸아이는 다정한 커플들에게 눈이 가 있습니다.
그러게 있는 남자친구는 왜 차버리곤 궁상인지,,,
위로가 필요한 딸에게 아빠의 지극한 마음을 담아서 한마디 해 줍니다.
"야! 우리도 커플룩 입었잖아!"(바지가 사이즈만 다른 같은 색상,같은 메이커)
딸아이 비명에 눈사태 나겠습니다.
"아빠~~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