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것과 얻은것
어제 저녁 일곱시쯤 퇴근하는길.
자동차 전용도로로 올라서서 터널하나를 막 빠져나왔을때 2차선 도로위에 뭔가 물체가 눈에 띄었어요.
한적한 도로 였지만 마침 내 뒷쪽으로 차 불빛이 있었던 터라 차선바꾸는데만 신경쓰며 지나치는데
도로위 물체는 로드킬 당한 새끼 고라니로 보입니다.
움직임이 없는데다 내가 위험하니 차를 세울 엄두도 못내고 지나쳤는데 저녁 내내 맘이 쓰입니다.
평상시 새벽출장이 많았던 나로서는 로드킬 당한 짐승들을 부지기수로 보아왔지만
어젯밤 그 고라니는 점심산책하는 산길로부터 가까운곳에서 발견된터라 유난히 그런가봅니다.
어쩌면 나를 놀라게 했던 노루는 아니었을까,,,
허연 눈밭에 나보다 먼저 발자욱을 낸 녀석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녀석은 내 친구인데,,,
회사가 지금의 위치로 자리잡은후 회사 마당을 거쳐 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를 직원몇이
개척을 했습니다.
첨엔 산소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놓은걸보고 걸어올라가봤다가 나즈막한 능선을 따라 가는길이 좋아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갔지요.
그러다보니 할머니의 밤나무 밭까지 이르게 되었고 조금 더 걷고 싶은 욕심이 날때면
골짜기 하나와 봉우리하나를 더 지나서 회사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날씨 따뜻할때 숲속으로 들어서면 참 좋았습니다.
굵은 나무 하나를 골라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자리를 잡지요.
그리곤 머리까지 나무에 맡기고 눈을 감고 있으면 잠이 스르르 올 지경입니다.
내 발자국 소리까지 멈춰버린 숲속은 고요하지만 잠시후면 또 다른 소리로 머릿속이 가득찹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그러다 나뭇잎이 떨어지며 나뭇잎과 나뭇잎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
인적에 숨죽였던 새가 다시금 지저귀는 소리.
뻥이 조금 심한 내 친구는 나무가 수관과 채관을 열어 양분 빨아올리는 소리까지 듣는다는데
난 아직 그런 지경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면 부지런한 개미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는 모습정도는 보입니다.
그런 산길 옆으로 새로이 길이 나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만든다고 산과 산사이를 푹 파버려서 골짜기를 만들고 그위에 시멘트를
부어서 길을 만들었습니다.
지방의 열악한 재정탓에 그 도로는 완공시기를 몇 차례나 연기해가며 작년에 개통됐습니다.
집에서 회사로 이어지는 그 도로가 완공되기만을 기다렸던 나는 그 도로를 신나게 달려서
회사와 집을 오고 갔습니다.
거리는 약간 멀지만 회사로 출근하는길은 신호등 하나 거치지않고 올수있는 길이라
난 무척 좋았더랬지요.
그런데 그 길이 뚫린후 예전처럼 산책로는 조용하지않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차량의 소음은 골짜기가 되어버린 도로의 벽을 울리며 증폭되다가
허공으로 분분히 흩어지고 그리곤 숲으로 파편처럼 비산되어 옵니다.
그래도 산책길은 걷는것에 주안점을 두었으니 그냥 저냥 비긴걸로 쳤지요.
점심시간 조용한 휴식이 반감된걸 편리한 출퇴근으로 비긴셈인데,
어젯밤 그 새로난 길에서 죽은 고라니때문에 얻고 잃은것에 대해 다시 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편리함을 얻었지만 점심여유를 잃었고,
산짐승들은 얻은거 없이 자유와 목숨을 잃었네요.
영 손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