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51년,5일

치악동인 2009. 8. 27. 18:58

지난주 수요일 새벽

늦은 시간에 잠들었는데 머리맡에 놓아둔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잠결에 알람인가 했는데 그런 생각은 불과 1초 정도였을뿐입니다.

아내가 전화기를 집어 내게 줍니다.

늘 아내는 나보다 잠귀가 밝지요.

액정에 뜨는 이름은 아주 낯익은 이름이지만 성이 다릅니다.

어라?

전화한 사람은 아내의 조카이며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왜?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선 전화를 받습니다.

시골에 혼자 살고 있는 둘째 처남의 사고소식을 알려옵니다.

"친구들이랑 낚시를 갔다가 술을 많이 마셨는데,,,

물에 빠졌는데,,,1시간반이 지났대요,,,잠수부가 건졌는데 병원으로 옮기는중,,,

이미 죽었대요,,,큰아저씨도 전화 안받고,,, "

머리가 멍해지는 와중에 아내를 봅니다.

차마 죽었다고 말하지 못해 둘째 처남이 사고를 당했다고 말해줍니다.

그래서?라고 아내가 재차 묻습니다.

할수없이 이미 죽었다고 병원으로 이송중이라고 말해줍니다.

일요일에 막내처남네로 잠시 가 계신 장모님한테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생각하고 말고도 없습니다.

셋째아들 갑자기 앞세우고 그 충격으로 파킨슨병을 얻었는데 둘째아들이 또 그렇게

비명횡사했다는 소식을 전할수는 없습니다.

아내도 나도 전화기를 들고 서로 쳐다봅니다.

우선 큰처남에게로 전화합니다.

최근에 큰처남은 큰아들과 전화를 바꿔쓰기로 했다니 조카는 큰처남과 통화할수없었지요.

다행히 신호 몇번울린후에 전화를 받습니다.

사실을 전합니다.

멍하기는 그쪽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지요.

난 멍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 아내나 큰 처남은 멍해야하지요.

아무리 망나니 짓을 하던 형제라서 안보고 살긴했지만 그래도 형제인데 멍해야하지요.

일단은 큰처남과도 장모님껜 비밀로 하자는데 합의를 했습니다.

환장할 일이지요.

잘난 아들보다 못난 아들이라서 늘 가슴한켠에 걸리던 둘째 아들의 죽음을 그 어머니는

몰라야합니다.

시간은 새벽세시하고도 반입니다.

아내가 주섬주섬 떠날 준비를 하며 중얼거립니다.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갈때도 그렇게 가냐,,,"

 

안개 짙은 새벽을 헤치고 죽음을 확인하러 갑니다.

가는길에 아내보다 한결 더 넋이 나간 처형을 만납니다.

병원엔 우리보다 먼저 처제네가 와 있습니다.

큰처남도 와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주검은 확인했답니다.

누군가 내게 묻습니다.

"보실래요?"

난 고개를 저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봐야하는건 염습할때 한번이면 족합니다.

제일 늦게 막내처남이 죽은이의 아들과 함께 옵니다.

군에있던 아들의 얼굴보는게 죽은이의 얼굴보는것보다 힘겹게 느껴집니다.

 

장모님은 모릅니다.

출장가야한다고 흰 새벽에 집을 나서는 막내아들이 둘째아들을 장례치르러 가는줄을 모릅니다.

큰 아들 내외와  두 아들들,

큰 딸과 작은딸 내외와 막내딸 내외가 함께 모여 둘째아들을 떠나보내는줄 모릅니다.

다만 꿈속에서 둘째아들을 봅니다.

장모님의 꿈속에 둘째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돈을 달라고 떼를 씁니다.

내가 돈이 어딨냐고 쫒아보내자 둘째 처남이 시골집을 한바퀴 돌아 큰집있는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둘째아들의 뒤를 따라가보던 장모님은 세개의 관을 봅니다.

모두들 그앞에서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잠에서 깬 장모님은 꿈 얘기를 막내며느리에게 합니다.

전화를 통해 온 식구가 장모님의 꿈소식을 듣습니다.

순간 오싹한 소름이 돋습니다.

 

51년을 살다간 그의 흔적을 치우는데는 겨우 5일이 걸렸습니다.

삼우제를 지낸 일요일에 시골집으로 다들 모여서 집정리를 합니다.

옷을 꺼내 태우고 잡다한 세간살이를 내다 버립니다.

뒷마당에 수북한 풀을 베고 군데군데 쌓여진 소주병 무더기를 자루에 담습니다.

정리가 끝난후 현관문엔 자물쇠를 채웁니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들어오는 전원의 차단기를 내립니다.

불이 꺼지고 냉장고가 멈추었습니다.

빈집을 남겨두고 형제들은 각자 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살아가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