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유감
설핏 잠이 들었는데 누가 내 코를 잡아 비틉니다.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내 옆에서 자는 마누라지요.
내가 돌아보자 마누라가 한마디 날립니다.
"오늘 그렇게 힘들었어? 회사 가서 뭐 했는데?"
"오늘은 현장에서 일하느라 힘들긴했어,,,"
궁색한 변명을 한마디 던지고 잽싸게 머리를 굴립니다.
어쩐지 잠자리에 들기전 뭔가 입이 댓발은 나오고 눈도 안 마주치는게 분위기가 수상했습니다.
얼른 필름 꺼꾸로 돌려봅니다.
우리집은 대략 열두시쯤 전후로 씻고 잠자리에 듭니다.
아홉시에 아내 가게 마치면 뒷정리 도와주고 함께 집에 올라오는데 그 시간이면 저도 출출해지고
아내도 출출할 시간이지요.
오늘따라 아내가 "시원한 소주 있어?"하고 묻습니다.
요 며칠 잦은 음주로 그닥 내키지않았던 제가 되 묻습니다.
"오늘 또 먹어? 좀 쉬지?"
"아니. 한잔먹고 푹 좀 자게"
오늘 아내는 예약손님때문에 다른날보다 두시간쯤 일찍 일어나 가게로 내려갔습니다.
당연히 잠도 부족하고 피곤했을테니 푹 자고 싶었을테고
그래서 한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지요.
우리 부부는 소주한병으로 나눠 먹으면 딱 맞습니다.
아내가 술상을 차립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부터 뭔가 꼬였습니다.
저녁에 집에 올라오면 아내는 녹초가 되어 소파에 늘어지고 제가 주방에서 부스럭대는게 정석이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집에 올라와보니 청소할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늙으신 장모님은 쓰레기통과 재활용통을 잘 구분을 못하시는지라 재활용 비닐봉투 모아두는곳에 뭔가를
잘못 버리셔서 작은 날파리들이 윙윙~
전 큰 짐승들은 안무서운데 왜 작은 곤충류가 무서운지요,,,(물론 뱀도 무섭습니다만)
쓰레기 정리부터 한다고 움직이는 동안 아내가 술상을 차리고 한잔 시원하게 걸쳤습니다.
여기까진 아주 좋았습니다.
적당한 포만감과 적당한 취기로 아내는 소파에 기대고 난 거실바닥에 눕습니다.
물론 상은 그대로 밀어둔채지요.
금방 안치운다고 누가 잡아먹습니까?
대부분은 이런 상황이 지속돼다가 드라마가 끝나고
아내가 씻으러 들어가면 그사이 제가 설겆이를 하게 되는게 평상시의 모습인데
오늘따라 내가 누워 뒹굴거리는 사이에 혼자 상을 치우고 설겆이 까지 해버립니다.
그때 조금 불안하긴 했습니다.
혼자 생각합니다.
'내가 한다고 말려야 할까? 에이,,,설겆이 얼마 안되는데 뭐,,,"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이지요.
그때 얼른 나서서 내가 하겠다고, 먼저 씻으라고 말렸어야 했어요.
머뭇대는 사이 아내는 찬바람나게 욕실로 들어가서 문 닫습니다.
화났나?
아무래도 나랑 눈 안마주치는게 화난거 같습니다.
이럴때 퍼뜩 군대생각이 납니다.
제가 군 생활하던 시절만해도 구타는 많이 사라진때였지만 아예 없진않았지요.
특히 낯시간에 아랫것때문에 윗사람으로 부터 지적이 있기라도 한 날이면 그 밤은 어김없이
"집합"이 있던 시절입니다.
절대 초저녁에 안 깨웁니다.
한참 달게 자는 새벽 두세시쯤 신호가 오지요.
머리를 툭툭 치는 손,
그리고 손짓.
어두운곳에서의 먼지터는 소리.
그리고 잠 못드는 새벽.
내 아내는 군대도 안 갔는데 어찌 못된 고참의 행동을 그리도 빼다 박았을까요.
어째 조용히 넘어간다 했더니 막 잠이 든 내 코를 잡아 당깁니다.
오늘 힘들게 일했다는 궁색한 내 변명에 일침을 날립니다.
"당신은 날 쳐다보고 있기는 한거야?"
알지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돈 벌겠다고 먼저 나간거 알지요.
나 안깨운다고 살금살금 나간거 알지요.
그래서 내가 설겆이 했어야 했지요.
근데 그게 그만 그렇게 됐지요.
살다보면 생각은 그게 아닌데 몸이 따로 가는 경우 종종있지않나요?
그래도 실수를 두번하면 안됩니다.
이럴때 내가 화를 내면 안된다는 거지요.
팍 죽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합니다.
"미안해,,, 먼저 씻으러 들어가면 내가 할려고 했어,,,"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곤 이상한 호흡소리.
색~색~크릅!
뭐야?
잠들었어?
화가 나서 분을 삭이고 있을줄 알았던 마누라가 술기운이 이제사 올라는지 잠이 들었습니다.
안 골던 코까지 골며 잠들었습니다.
이런 이런!!
기껏 자는 사람 코 비틀어 깨워서 한마디 던져 쫄게하고는 잔다고?
아이고 환장하겠습니다.
이 한밤중에 잠 깬 나는 어쩌라고요.
참 한밤에 유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