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돌 기둥?

치악동인 2009. 5. 18. 19:34

아주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핸드폰이 책상위에서 혼자 울고있다.

후다닥 뛰어가서 전화를 받아들었더니,

중저음의 목소리.

"바쁘십니까~?"

응? 누가 이런 건방진 톤으로 내게 말하지?

순간 짜증이 울컥 밀려온다.

이놈의 승질머리하고는,,,

꾹 참고 물었다.

정중히.

"누구십니까?"

"동환입니다."

맞다.

내게 요런 톤으로 전화한놈은 일찌기 이놈 뿐이다.

조카놈임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바닷가에서 씨름하자고 대들어서

날 모래속에 자빠뜨리고는 내 배위에 올라탔던 조카놈이다.

어찌나 무겁던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놈은 꿈쩍도 않는다.

음,,,

어쩌겠는가.

수많은 무협지에서 언급된바와 같이

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밀어내며 흐르지 않던가.

결국 난 항복을 외쳤다.

속으론 "야 이 뚱땡아!"하고 욕했다.

 

그 뚱땡이놈이 얼마전 아들을 낳았다.

얼마나 좋은지 애 낳기 며칠전부터 아예 애낳기 이틀전입니다 하루전입니다 생중계를 한다.

그리곤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고  할아버지 되신걸 축하한다고 전화를 한다.

빌어먹을놈.

지가 아빠된거나 축하하지 왜 난 걸고 넘어지냐 이놈아!

그러고보니 이놈 아들난지가 한달이 얼추 다되어 가는거 같다.

오늘은 웬일로 전화를 했을꼬?

 

"이름지었습니다. 석주!"

"석주? 돌 기둥?"

아뿔싸,,,

또 그놈의 알량한 한문풀이를 해버렸다.

고르고 골랐을테고 음풀이에 획수까지 꿰맞춰서 이름짓느라 고생했을 귀한 아들놈이름을

하필이면 "돌기둥"으로 해석할건 뭔가.

이 버릇을 어찌 고칠꼬.

헌데 아무리 대충 해석했다해도 너무 그럴듯하게 풀었다.

돌기둥처럼 든든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그도 좋지않은가.

우뚝.

 

근데 뚱땡아.

너 그거 아냐?

요즘 아들있는 사람들 늙어서 개털이더라.

우리 장모님 봐라.

아들이 넷이면 뭐하냐?

인간같은 아들놈 하나 없는데.

빌어쳐먹을 막내아들놈은 지네 엄마 병원에 입원시켰더니 지식구들 우르르 끌고 와서는

저녁 사 먹이고 술 사 먹이고 아침되니 아침은 언제 먹냐고 내 얼굴만 쳐다보더라.

참 몰염치도 그런 몰염치가 없다.

결국 아침까지 해장국집 데려가서 사먹이고

꼬맹이들 용돈까지 쥐어줘서 보내고나니 참 허탈하더라.

어찌 저 모양으로 키웠을꼬,,,

내딸은 과일먹고 싶다는거 너무 비싸다고 안 사먹였는데 돈은 엄한데 다 쓰고

주머니엔 카드영수증만 수북하니,,,

 

뚱땡아.

아들 돌기둥처럼 실한놈으로 잘 키워라.

부디 예의도 알고 범절도 알고 남을 배려할줄아는 그런 실한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