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동인 2009. 1. 5. 12:48

그놈의 화절령이 한번 머리속에 꽂힌이후로

내내 떠나질 않습니다.

기어이 딸아이 핑계라도 대어서 집을 나섭니다.

천천히 가도 된다는 딸아이를 "너 레포트써야한다며? 그럼 빨리 가야지!"라고 앞세워서

제천에 내려놓고는 정선까지 냅다 달립니다.

아내 일하는날 혼자 놀러나가는건 상당히 미안스러운 일이지만(그것도 먼거리를)

겨울지나기전에 어차피 한번은 갈테니 미안한 마음은 제천가는김에 들린다는 핑계로 밀쳐둡니다.

휴일 끝자락이다보니 확포장공사가  덜된 민둥산입구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차량들이

많이 밀려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도 난 남들과 반대방향으로 갑니다.

남들은 서울쪽으로 갈 시간에 난 정선으로 들어섭니다.

인터넷에서 보니 강원랜드 매립지 주차장에 차 세우고 어딜 들머리 삼아서 올라간더던데

매립지주차장이 어딨다는건지 강원랜드를 한바퀴 뺑돌아도 안보입니다.

할수없이 안내하는 아가씨한테 물어봐야겠네요.

"화절령 올라가는 길이 어디예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모르다니? 여기 직원이 모른다? 그럼 내 질문이 잘못된건가?

다시 물어봅니다.

"하늘길 트래킹코스 올라가는길이요"

"아~예! 저 아래 폭포주차장에다 주차하시고 반대편에 보시면 팻말있어요"

그렇네요.

강원랜드 입구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폭포주차장 반대편에 팻말이 있는걸 못봤어요.

너무 앞만보고 빨리 달린 탓 이지요.

그러게  천천히 여유있게 운전을 해야하는데 습관이 되어버린 운전패턴은 쉽고 고쳐지질 않습니다. 

몇발자국 경사길을 걸어올라가다보니 얼어붙은 개울물이 보입니다.

그런데 주변의 눈 색깔과 비교해보니 개울물이 훨씬 까맣습니다.

문득 어릴때 태백선 열차를 타고 묵호에 있는 큰집에 갈때 보았던 시커먼 개울물이 생각납니다.

열차가 탄광지대를 지날때 높다란 기차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닥다닥 들러붙은 낮은 집지붕들,

그 사이를 흐르는 시커먼 개천.

아마도 그당시는 갱도내에서 나온 시커먼 물이 정화과정을 생략하고 마구 개울로 방류되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정화과정을 거친뒤 방류가되니 그전처럼 새까만 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치는 않습니다.

오르막으로 2킬로미터쯤 오르고 나니 길에 눈이 제법입니다.

그렇게 미끄럽지는 않아요.

아이젠도 필요없고 지팡이도 필요없어요.

그냥 터벅터벅 걸어가면 돼요. 

화절령 삼거리에 도착하니 산중턱에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집한채가 서 있습니다.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저 집은 참 따뜻할것 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웠다면 쉬어가고 싶은 유혹이  꽤나 생겼을겁니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고 볼때기며 귓볼이 빨갛게 얼었을때 주인장이 문열고 나서면서

"따뜻한방 있어요~!" 한마디만 해준다면 정말 참을수없는 유혹이겠지요.

화절령에서 제일 보고싶었던곳은 숲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진 도롱이못이었지요.

팻말을 보고 여기가 거기구나~하지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작은 연못입니다.

더구나 얼어붙은 연못에 눈까지 덮히니 풍경은 너무 쓸쓸해보입니다.

저 속엔 작은 곤충들이며 잠자리 유충이며 도룡뇽이며 개구리가 겨울을 나고 있을테지요. 

조금 떨어진곳 언덕아래에 아롱이 못도 있는데 거긴 정말 못인지 뭔지 구분이 안가더군요. 

길을따라 계속 걸어올라갔더니 사람발자국은 점점 줄어들고 동물 발자국과 사람발자국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길 이란 그래야지요.

사람이며 짐승이며 세월이며 고개마루넘어가는 햇살이며

목을 메이며 넘어가는 아리랑타령도 함께 가야지요.

이미 내려갈 사람들은 다 내려가고 산중에 나만 남았습니다.

도롱이못에서 내려가는 사람 몇과 만난후로 인적은 없습니다.

이쯤되면 정선아리랑이라도 한구절 불러제끼며 걸어도 좋으련만 그놈의 가사가 생각이 나야지요.

"아리랑~아리랑~아리라앙 고개 고개로 나를~넘겨주소~"

담에 이곳에 올땐 정선아리랑 노래연습좀 해서 노래불러가며 걸어봐야겠습니다.

너무 슬프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