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혜수씨
미안합니다.
벌써 이십년이나 후딱 흘러버린 지금에 와서야 당신에게 미안하단말을 합니다.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난탓인지 이젠 당신의 성이 이씨였는지 김씨였는지
자꾸 헛갈립니다.
왜 안그렇겠습니까.
어쩜 당신은 날 아예 잊어버렸는지도 모르는걸요.
당신은 잘 살고 계실런지요.
잘 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내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는 제대를 앞둔 날 위해
화장품까지 챙겨보내주셨지요.
그런 당신께 잘 받았다고,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대신에 난 당신에게 그간 고마웠다는 이별을 전했습니다.
이제 제대한다고,,,
참 황당하셨지요?
일년반씩이나 고단한 군생활에 위로를 보내주셨던 당신께 내가 한일이라곤 고작
그간 감사했다는 이별의 말뿐이었네요.
우연히 고참병의 편지를 대신 답장해주다가 당신과 인연이 된후
꼬박꼬박 보내주신 편지가 내게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되었는지 당신은 잘 모르실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당신께 그리할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겐 나의 제대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내될 여자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요.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참 궁금했어요.
한없이 외로움을 타는듯 젊음을 고뇌하는 당신이 궁금했어요.
이미 여자남자를 떠나 당신은 내 친구였거든요.
일년반이나 편지를 나눈 정겨운 친구였지요.
난 그래서 무서웠답니다.
당신을 만나서 당신을 여자로 대하게 될까봐 겁이난거지요.
내게 여자는 군에간 나를 일편단심으로 기다려준 지금의 아내
그 사람 하나여야 하거든요.
당신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내면서 참 많이 미안했습니다.
참 많이 궁금했습니다.
제대하면서 딱 한번만이라도 당신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간 고맙다고 얼굴마주보고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못해서 많이 미안했습니다.
혹 원망을 하진 않았던가요?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친구가 하루아침에 연락두절이라면
연락을 끊어버린 친구가 원망스러울텐데요.
하루이틀,그리고 한달두달
편지한장없는 내가 원망스러워 속상해하진않았나요?
그러다 점점 잊혀지던가요?
아마도 잊혀졌겠지요.
그런데 난 당신에게 미안해서 당신을 여태까지 잊지 못했답니다.
지금은 당신의 주소와 그다지 멀지 않은곳에 삽니다.
가끔은 근처로 지나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당신의 주소지로 찾아가 탐문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내 친구가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잘 사시겠지요?
어쩌자고 이십년이나 지난지금 자꾸 당신에게 더 미안해지는건지 모르겠네요.
차라리 당신을 한번쯤 만났더라면
그래서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할수있었다면 지금 이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려나요?
이젠 나도 그만 당신을 잊어야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