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나 가자.
두해전에 치악산 구룡사에서 열리는 산사음악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지.
분위기 아주 좋았어.
오래묵은 은행나무가 샛노란 이파리를 분분히 날리는 나무아래로 법고를 치며 춤을 추는 스님은
우중충한 날씨에 분위기 죽을까 비 안오는 주문을 외운다며 열심히 북을 쳐 댔겠지.
그렇지만 스님도 알고 있었을꺼야.
내리는 비를 막을수없다는걸.
이 세상엔 막을수없는일 천지야.
가령 맑은하늘을 보다가 날선 햇빛에 눈을 베이는 일하며
일렁이는 갈대에 맘을 빼앗겨 허둥대는 일하며
깊숙히 봉인해둔 마음의 빗장이 얼결에 풀리는일하며.
어찌 막을수없는일이 한둘일까.
그날 비를 맞으며 산사음악회는 그렇게 시작이 됐었지.
그게 벌써 두 해나 전 이야기네.
이번엔 날씨가 참 좋았어.
가뭄탓인지 입구에 늘어선 단풍나무가 아직 불타오르진 않았지만
산비탈을 흘러내려온 단풍은 골짜기로 모여들고 있었어.
지난주에 본 한계령의 풍광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치악산도 멋있어.
정을 두고 보면 설악산이던 치악산이던 점심마다 산책하는 우리회사 앞산구릉도
다 멋지긴해.
음악회가 이미 시작했을 시간인데 배치해둔 의자에 앉은 관객은 그다지 많지가 않아.
다들 산에 가겠다고 맘먹고 왔으니 산에 올라가기 바쁜거야.
유명가수가 오기를 고대하며 앞줄에 앉은 여고생들 한줄.
그리고 햇빛을 피해 양 옆으로 갈라져 앉은 일부의 사람들.
나도 그중에 한사람이 돼서 햇빛이 덜 드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어.
경찰악대의 연주와 노래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필사의 오프닝공연이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산을 오르기 위해 지나칠뿐이었거든.
간혹 삼삼오오 즐거운 아줌마부대들이 손을 머리위로 올려 경찰악대에게 힘을 보태주는 정도.
한참을 그러고 앉았으려니 나도 슬슬 진력이 나기 시작했어.
마침 오프닝을 끝내고 본격적인 순서를 준비하느라 무대를 정돈하는 사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지.
기왕 왔으니 세렴폭포까지만 산책삼아 가보기로 하지 뭐.
딸아이도 데려왔겠다 다리난간에 엉디 걸치고 사진도 함 찍어보고.
이런이런,,,
세렴폭포까지만 단숨에 갔다왔는데 순서가 꽤나 지나갔나봐.
멋진 승무공연을 놓쳤네.
겨우 끝자락만,,,
지난번엔 가야금연주도 있었고 퓨전재즈팀도 있었는데 그 사이에 다 지나간건가?
아님 어제오늘 이틀이라더니 볼만한건 어제 다 했나?
에헤,,,
사회자 멘트로 봐선 이제 끝날시간이 다 되어간다는데 이거 뭐야?
오늘 꽝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가 나타난다고?
엉?
설운도?
갑자기 아줌마들이 우르르 무대앞쪽으로 몰려든다.
이건 의자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앞으로 씰룩이는 엉덩이와 늘어진 옆구리살만 보인다.
이쯤에서 방빼야겠어.
성실아. 가자.
역시 내 딸도 내 취향이랑 비슷한가보다.
이녀석도 얼른 털고 일어날 준비를 마쳤네.
이 소란스러움이라니,,,